“영화를 찍을 때가 역시 제일 행복하다”

 

흥행감독으로서 누릴 걸 다 누려본 강우석 강독이 작가 강우석으로서의 입지를 새롭게 다지는 작품을 선보인다. 강우석 감독의 18번째 영화인 <이끼>를 두고 일각에서는 ‘강우석 최고의 영화’라는 소리가 나오고 있다. 앞으로 연출에만 전념하고 싶어 하는 강우석 감독은 재밌는 영화, 눈물 쏙 빼게 하는 영화,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영화, 시대를 고민하는 영화를 만들 것이다.

 

강우석 최고의 영화 <이끼>로 현장 복귀

 

강우석 감독이 며칠 전 밴쿠버로 떠났다. 밴쿠버에는 그의 가족들이 있다. 그도 몇 해 전인가부터 기러기 아빠로 살아간다. 떠나기 전 통화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어이, 잠 좀 자다 올께.” 그것 참. 오랜만에 애들을 만나는데 잘 생각부터 하다니 원. 하지만 사실 그도 그럴 만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는 요즘 잠을 잘 자지를 못했다. 자신이 회장으로 있는 영화사 ‘시네마서비스’때문일까? 아마도 그럴 것이다. 그는 지난 1년 사이에 진실로 괜찮은 영화를 잇달아 제작했다. <김씨 표류기>가 그랬고, <백야행>과 <용서는 없다>도 꽤 괜찮은 수작들이었다. 상업적인 이윤을 내기에만 바쁜 현재의 국내 영화판 풍토에서 돈벌이보다 작품구질을 먼저 생각하기란, 시네마서비스 같은 전통의 충무로 제작사밖에 할 수 있는 데가 없다. 하지만 시네마서비스는 위의 세 영화로 그다지 재미를 보지 못했다. 솔직히 말하면 모두 다 BEP를 맞추기에는 2% 부족한 흥행실적을 냈다. 한때는 곳간이 넘쳐났던 자신의 회사를 생각하며 강우석 감독은 요즘 분명 마음이 그리 편치 못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아는 강우석 감독은 성격상 돈, 자금, 자본 문제로 잠을 자지 못하거나 그러는 사람은 아니다. 그로 하여금 불면의 나날을 보내게 한 것은 그보다는 신작 <이끼>일 확률이 높을 것이다. 1988년 <달콤한 신부>로 데뷔한 이래 강우석 감독은 지난 해 <공공의 적 1-1>까지 17편의 영화를 연출했으며(투자하고 제작한 작품은 빼고, 순수하게 감독으로서만. 근데 이 같은 필모그래피의 편수는 국내에 배창호 감독 정도밖에는 갖고 있지 않다.) 이번 <이끼>는 그의 18번째 영화이자, 강우석의 또 다른 강우석일 수 있음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일각에서는 이번 그의 작품을 두고 ‘강우석 최고의 영화’라는 소리가 나오고 있을 정도다. 그는 이제 올곧이 감독으로서만 자리를 잡으려고 하고 연출력 면에서 부동의 자리를 지키고 싶어 한다. <이끼>를 만들면서 그가 연일 잠 못 이루는 고민에 고민을 했던 건, 진실로 이번 작품에 목을 걸었기 때문이다. 그는 흥행감독으로서 누릴 걸 다 누려본 만큼, 이번엔 작가 강우석으로서의 입지를 새롭게 다지고 싶어 한다.

 

– 이제 감독으로 돌아가는가?

 

그런 말을 들으면 마치 내가 그동안 연출을 떠나있었던 걸로 들리겠다. 연출에 전념하겠다, 뭐 그런 표현을 하는 게 더 좋겠다. 사실 나에게 그동안 여러 수식어가 있었다. 감독, 제작자, 투자자, 배급업자 등등. 감독보다는 뒤의 용어가 더 많이 쓰인 적도 있었다. 하지만 결국 나는 감독일 뿐이다. 그동안 제작을 하고 투자배급을 하고 그랬던 것도 어떻게 하면 감독이 영화를 더 잘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려고 했던 욕심 때문이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게 다 ‘헛일이었다’라고는 전혀 생각지 않지만 감독으로서 더 많은 시간과 공을 들이는데 있어 외도 격이 됐었던 건 사실이다. 요즘 들어 부쩍 내 뱃속에서 작품을 하고 싶다는 욕구가 솟구친다. 영화를 찍을 때, 현장에 있을 때가 역시 제일 행복하다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는 계속해서 연출을 할 것이다. 재밌는 영화, 눈물 쏙 빼게 하는 영화,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영화, 시대를 고민하는 영화를 연출할 것이다. 앞으로는 적어도 1년에 한편 씩은 만들 생각이다.

 

제일 어려운 여건에서 할리우드 영화와 맞붙고 싶다.

 

– 올해는 두 편을 연출하는 듯한데.

 

맞다. <이끼>를 막 끝냈다. 하지만 아쉽게도 개봉은 7월에 할 예정이다.

 

– 개봉이 늦어지는 이유는?

 

7월 시장에서 진가를 인정받고 싶어서다. 애매한 시즌에 애매한 작품과 경쟁해서 1등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 제일 어려운 여건에서 할리우드의 큰 영화들과 붙고 싶다. <이끼>는 나름, 그만큼 자신 있는 영화다.

 

– 또 다른 영화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6월에 크랭크 인할 영화다. <글로브>라는 제목의 퇴물 프로야구 선수 얘긴데, 야구 얘기는 아니다. 일종의 휴먼 드라마다. 이번에 <이끼>를 찍으면서 몸과 마음이 지쳤다. 그만큼 센 내용의 영화였고, 고민이 많이 뒤따랐던 영화였다. 바짝 긴장한 상태로 몇 달을 보냈다. 막상 끝내고 나니까 조금 편한 영화를 하고 싶어졌다. 따뜻한 영화. 마치 내가 젊었을 때 찍었던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같은 영화. <글로브>는 바로 그런 영화다.

 


– <이끼> 얘기를 해 달라.

 

인터넷에서 연재됐던 만화를 본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기도원 출신의 사람들이 어떤 마을에 공동체를 만들고, 그 안에서 벌어졌던 일들이, 공동체를 이끌었던 목사의 죽음을 통해 밝혀진다는 이야기다. 비밀의 열쇠는 마을의 이장이 쥐고 있으며 이장과 대립각을 세우는 사람은 목사의 죽음으로 마을을 찾게 된 그의 아들이다.

 

– 하지만 영화에는 실로 다양한 캐릭터들이 나오고 그 에너지들이 넘쳐난다.

 

이 영화의 놀라운 점은 캐릭터 각각이 안고 있는 과거의 비밀과 그로 인해 얽히고설키는 인간관계다. 거기엔 선과 악의 차이가 별로 없어 보인다. 궁극적인 승자도 없어 보이며 그래서 마지막 에필로그의 반전이 뒤통수를 친다. 마치 영화를 본 것처럼 얘기하는데 어디 가서는 그런 식으로 얘기하지 마라. 아무튼 분석은 비교적 정확했다고 본다. 이 영화의 러닝타임은 약 1시간40분인데 캐릭터간의 행동 동기는, 말한 것처럼, 마지막 에필로그까지 가야 정확하게 밝혀진다. 그래서 전체적인 이야기의 스타일은 미스터리 심리극의 모양새를 띤다.

 

– 미스터리는 당신이 잘 안 해 본 게임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기존의 미스터리와는 차별성이 있는, 독특한 미스테리가 나왔다는 느낌을 준다.

 

모르겠다. 그냥 내 식대로 찍으려고 애썼다. 중간 중간 강우석표 유머가 담겨져 있기도 하다. 당신 말대로 미스터리의 기존 관습, 컨벤션이라고 하나 그걸?, 어쨌든 늘 봐왔던 식의 미스터리는 만들 생각이 없었다. 잘 알지도 못했고.

 

– 당신은 늘 저돌적이다. 그런 챌린징한 성격을 마음에 들어 하는 사람이 많다. 그래서 당신은 승부사로 불린다.

 

글쎄? 사람들마다 성격이 여러 가지일 것이다. 돈을 아껴서 버는 사람이 있고, 더 크게 벌기 위해 쓰는 사람이 있다. 나는 후자 타입이다. 하지만 둘 중에 꼭 어느 한쪽이 옳다고 얘기하는 것은 아니다. 그냥 난 그런 편이고 종종 그게 잘 들어맞는 경우가 많았을 뿐이라는 얘기다. 지금은 모두 안전한 영화를 해야 한다고들 한다. 살아남는 게 우선이라고도 한다. 하지만 난 지금이야말로 리스크가 있어도 제대로 된 작품으로 승부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진짜 흥행은

진짜 작품이 만든다. 내가 <이끼>로 얻고 싶은 것은 진짜 흥행을 아는 진정한 감독이라는 평가다. 하지만 그렇게 될까 궁금하다.

 

강우석은 강한 척, 약한 사람이다. 그는 늘 영화계의 돌풍을 뚫고 살아남는 역전의 용사처럼 굴지만 사실 내심으로는 한편한편을 만들면서 노심초사하는 여린 성격의 소유자다. 그는 이번에 2주 기한으로 밴쿠버로 떠났다. 그가 거기서 2주 동안 쿨쿨 잠을 잘 것이라고? 필자는 절대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