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아이들이 사파 곳곳에서 찍었던 마을의 사진으로 전시회가 열렸다. 아이들만큼이나 열정적으로 전시회를 준비했던 선생님들과 긴 시간 자신의 시선을 카메라에 담아내기 위해 애썼던 학생들에게는 손꼽아 기다려 온, 중요한 날이다. 그러나 마냥 기쁜 마음으로 준비할 수는 없었다. 이 전시회가 끝나면 올해의 베트남 ODA도 마무리 짓게 되기 때문이다. 그 복잡한 마음을 아는지, 종일 먼지 같은 비가 내렸다. 카메라 하나로 문화를, 예술을, 배움을 나누었던 ODA. 그 마지막 전시회 현장을 소개한다.

 

ODA_4화

 

잠 못 들던 전시회 전날 밤

 

전시를 앞두고 공식적인 수업이 모두 마무리 되어간다. 수업으로 분주했던 교실은 전시 작품으로 가득 차있었고, 이따금 학생들이 자신의 작품에 문제는 없는지 확인하러 들렀다. 거리에는 활력 넘치는 초•중 친구들이 사람들에게 전시 초대장을 전해주고 있었고, 동아리 학생들은 작년 엽서와 비교하며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안개 속에 우리 전시를 알리는 현수막이 또렷하게 보였다. 그렇게 우리는 전시를 맞이하고 있었다.

 

안개가 걷힐 기미가 없다. 며칠째 안개와 비, 찬바람이 뒤섞여 있다. 아침에 눈을 뜨고, 점심에 밥을 먹고, 저녁 잠자리에 들기 전까지 창 너머 날씨 눈치를 본다. 전시가 가까워질수록 아이들도 선생님들도 초조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늦게까지 잠들지 못하고 뒤척였다. 내일은 해가 뜰까.

 

“아침이다!
이 날이 오기를 기다렸어요!”

 

아침 6시. 모두 분주하다. 미리 정리해 둔 전시 물품을 챙기는 A. 행여 아침을 거를까 입에 빵을 물고 있는 B. 못 다 말린 머리를 늘어뜨리고 우왕좌왕하는 C. 짐을 머리에 이고 방을 떠나기 시작한 D. 자신의 몸만한 짐에 거의 딸려가는 듯한 E. 짐을 짊어지고 공원으로 향하는 선생님들 사이로 아침이 보인다. 아뿔싸! 안개가 사라진 거리에 이제는 먼지 같은 비가 흩날린다. 어쩔 수 없다. 안개 속 마을 사파, 하루 안에 사계절이 모두 들어있는 사파 아니던가. 먼지야 털어버리면 그만이지.

 

ODA_4화

 

아침 8시. 비가 안개로 바뀌었다. 학생들이 공원에 모두 모였다. 각자 오늘 해야 할 일들과 자신의 역할을 점검한다. 우리는 손과 눈과 입을 모아 서로를 격려했다.

 

“꼬렌!(파이팅!)

 

제법 떨어진 교실에서부터 작품을 옮겨와 설치를 시작했다. 집게로 사진을 걸고 있는 ‘뚱’이 오늘따라 유난히 밝다.

 

“기분이 굉장히 좋아요. 오늘 제 사진을 전시할 자신이 있어요. 이 날이 오기를 오랫동안 아주 많이 기다렸거든요.”

 

먼지 같은 비가 흩날리는 속에서 전시의 시작을 앞두고 학생들의 축하 공연이 있었다. 소녀시대 음악이 흘러 나온다. 한국에서 온 우리를 위해 특별히 준비한 학생들의 배려였다. 짧은 시간 개막공연을 위해 열심히 노력했을 흔적이 보인다. 한국에서 오신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가족들의 격려와 응원 메시지로 전시의 문을 열었다. 학생들은 한국에서 오신 손님에게 “안녕하세요!” 크게 인사하며 자신의 작품을 세세히 소개했다.

 

천진난만한 활기가 넘치는 초•중 섹션과
진지하고 어른스런 동아리 섹션

 

‘링’을 비롯한 학생들이 사람들에게 아트맵을 나눠주었다. 그 아트맵을 따라 전시장을 둘러보자.

 

좁은 화단을 따라 걸으면 나만의 액자가 보인다. 바위 곳곳에 놓인 이 액자는 학생들이 손수 만든 것으로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사진과 짤막한 글이 붙어있다.

 

ODA_4화

 

기우뚱한 나무와 나무 사이에 걸린 철망에는 사파 곳곳을 돌아다니며 제작한 「내 눈은 어디 있지」가, 합판에는 아이들이 제작한 꼴라주가 붙어 있다. 꼴라주를 처음 접해본 아이들의 신기함이 옹기종기 모여있다.

 

ODA_4화

 

분수가 있는 곳으로 넘어가니 작년과 올해에 이어서 제작한 천 지도가 보인다. 사람들은 소수민족 천과 사진, 그림이 붙어 있는 지도 앞에서 기념 사진을 찍는다.

 

ODA_4화

 

오른쪽에는 폐품을 활용한 정크아트 스타일의 작품이 눈에 띈다. 아이들과 마을 주민이 생각하는 사파를 합판 위에 올려뒀다. 우주를 꿈꾸는 마을, 공항이 있는 마을, 무지개와 귀신이 나오는 마을 등 모든 즐거운 상상이 한데 모여 있다.

 

ODA_4화
ODA_4화

 

분수대를 끼고 돌면 마을에 관련된 글과 그림, 사진이 한 권에 다 담겨있는 아트북이 곳곳에 놓여있다. 아트북 제작에 가장 열심이었던 ‘튀이’가 책을 소개한다. 곁에 놓인 방명록에는 벌써 많은 사람들이 이 책과 전시 감상을 남겨둔 흔적으로 꽉 채워져 있었다.

 

ODA_4화

 

초•중섹션이 끝나갈 무렵의 체험부스에서는 「내 눈은 어디 있지」를 체험할 수 있고, 아이들이 사진도 찍어준다. OHP필름에는 학생들이 그렸던 그림도 그려볼 수 있었다.

 

ODA_4화

 

동아리 섹션은 아이들의 모습과 꿈이 활짝 피어있는 해바라기가 맞이한다. 그 옆으로는 행복한 아이들이 살고 있는 마을이 보인다. 조금 걷다 보니 노동자를 찍은 사진과 그림이 이젤에 놓여 있다. 주말마다 소수민족이 모여 새를 파는 곳의 고양이와 개와 새가 뒤섞인 사진도 보인다. 새를 팔던 소수민족 남자는 사진 옆에 새장을 뒀다.

 

ODA_4화

 

맞은편 현수막으로 제작한 큰 사진에 ‘빙’과 ‘카잉’이 신나게 점프 중이고, 그 옆으로는 소수민족분들의 사진이 환하게 우리를 맞이하고 있다. 모빌처럼 빙글빙글 도는 사진나무를 지나 산사호 아이들이 촬영한 마을 사진이 보인다. 소수민족에게는 너무 흔한 장면이니 큰 흥미가 없을 줄 알았는데 그들은 그들의 문화와 환경을 촬영한 자신의 아이들 사진에서 발걸음을 떼지 못했다.

 

ODA_4화

 

그리고 마지막에는 라오까이와 사파 매개자들이 직접 촬영하고 글을 쓴 사진들이 펼쳐져 있다. 이미 비에 젖어 눅눅해 진 사진도 있었지만 사람들은 정말 열심히 글을 읽고 사진을 보았다.

 

사랑 없이는 만날 수 없는 사파를
관람객들에게 선물하다

 

전시장 곳곳을 세밀히 관람 중이던 외국인 ‘데이비드’ 부부에게 오늘 전시의 소감을 물어봤다.

 

“정말 아이들이 찍은 사진인가요?(몇 번을 거듭 물었다) 마을 사람들을 찍은 사진에는 거리가 안 느껴져요. 주제도 다양하고. 아이들의 시선이라고 하기에 어떤 사진들은 진지함이 가득했어요.”

 

ODA_4화
ODA_4화

 

많은 사람들이 학생들의 작품 앞에서 기념 사진을 찍었다. 아이들의 사진을 다시 핸드폰으로 찍기도 하고, 마치 자신의 작품인 양 앞에서 다양한 포즈를 취하기도 했다. 그리고 점프 사진 앞에서는 비에 젖은 잔디를 밟고 올라서 힘차게 점프를 했다. 젖은 발을 툭툭 털어내며 ‘항’씨는 아이들에게 이게 정말 너희들이 찍은 사진이냐고 말을 건넸다.

 

“너희들이 얼마나 많이 사파를 사랑하는지 알 것 같구나. 그런 사랑 없이는 이런 사진을 찍을 수 없을 꺼야. 사파는 처음인데 이런 사랑을 보여줘서 참 고맙다.”

 

그녀의 인사 때문일까 각 섹션을 맡고 있는 팀원들의 어깨는 춤을 춘다. 오늘 몇 번이나 전시장을 찾은, 공원 근처에서 세움(오토바이 택시)을 하고 있는 ‘황’ 아저씨에게도 처음으로 말을 건네보았다.

 

“저는 작년에도 이 전시를 보았어요. 이번 전시는 작년 전시와 다르게 주제도 다양해지고 공간도 넓어졌어요. 그림과 사진 조형물들도 많아서 볼거리도 많아졌네요. 이 전시 내년에도 하는 건가요?”

 

ODA_4화

 

“타이 장 오늘은 정말 행복했어요.
그리고 고마워요.”

 

비와 안개와 햇빛은 바람을 따라 같이 움직인다. 움직임 없이 버티고 서 있는 건 전시장을 지키고 있는 아이들과 전시장을 찾은 사람들의 응원과 격려뿐이다. 작년도 올해도 열심히 준비한 전시가 끝나간다. 전시가 끝나면 개운할 거라 생각했지만 작년도 올해도 서운함과 아쉬움이 진하다. 나 혼자 그리 생각하는 건 아닌가 보다. 전시가 끝난 자리에 아이들은 모여 앉아 전시의 아쉬움을 나누고 있었다. 전시 철수를 하고 있는 내 어깨를 다독이는 ‘빙’의 손길이 따뜻하다. “타이 장 오늘은 정말 행복했어요. 고마워요.”

 

전시 결과물을 각자 나누고 눅눅하게 젖어버린 남은 사진들과 함께 숙소로 돌아왔다. 침대에 누우면 금방이라도 잠들 것 같았다. 온 몸에 묻어 있던 비도 안개도 햇볕도 다 털어내고 잠을 청한다. 눈을 감고 오늘을 떠올렸다. 사람들이 전하던 아이들의 사진 이야기에 뿌듯했다. 그러다 내일 있을 수업을 떠올렸다. 무엇인지 모를 복잡한 마음에 다시 잠에 들지 못했다. 나는 어쩌면 마지막이 될 수업을 맞이하기 싫어 붙잡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어제도 오늘도 그렇게 불면의 밤이 깊어간다.


장작

글, 사진_ 장작(장근범)
일과 작업, 문화예술교육을 병행하며 살고 있다.
svjin96@gmail.com

 

문화예술교육 공적개발원조(ODA, Official Development Assistance) 사업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이 주관하는 문화예술교육 공적개발원조(ODA, Official Development Assistance) 사업은 수원국의 문화 존중과 주인의식(ownership)이 강조된 문화예술교육을 제공함으로써, 공적개발원조의 본래 목적인 인도주의적•보편적 가치를 지향하는 것은 물론, 국제사회 내 ‘지속 가능 발전 교육으로서의 문화예술교육 가치 확산’에 기여하고자 2013년에 시작되었다. 올해는 세 명의 예술강사(장근범, 김민지, 여한아)가 베트남 라오까이성 사파현 초•중교육과 사파에 처음으로 결성된 동아리 교육이 진행되고 있다. 베트남 지원사업은 2017년까지 5년간, 지속적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ㅇ주최 : 문화체육관광부
ㅇ주관 :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ㅇ문화예술교육ODA 사업단 : 익산공공영상미디어센터
ㅇ협력기관 : KOICA 베트남 사무소

 

* 이 시리즈는 문화예술교육 공적개발원조 (ODA, Official Development Assistance) 사업을 위해 베트남으로 떠난 예술강사 3명의 이야기로, 총 4회에 걸쳐 소개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