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헉! 아프리카> 쌀집아저씨, 5년 만에 PD로 돌아오다

 

그가 돌아왔다. ‘몰래 카메라’ ‘책책책, 책을 읽읍시다’ ‘양심냉장고’ ‘이경규가 간다’ 등 누구도 하지 않은 시도로 예능의 신세계를 열곤하던 쌀집 아저씨 김영희 PD가 돌아왔다. MBC 최연소 예능국장, 한국PD연합회장, 아프리카 외유 등으로 떠나있던 방송 현장으로 5년만의 복귀다. 프로그램을 만들 생각에 가슴이 마구 뛰어대고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것이 김PD의 요즘 일상이다.

 

“특별한 동기 같은 건 없었어요. 소설을 읽다, 그림을 보다 접하는 아프리카는 이국적이고 묘한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그리움이자 동경의 존재였죠. 수년 간 이유도 알 수 없이 누적된 욕망의 표출이라고 할까요.” 십 수 년 전, 김PD의 오랜 짝꿍 이경규, 그리고 아프리카를 다녀왔다는 이경규의 친구 등과 술을 마시다 던진 “PD는 아프리카를 다녀와야 해. 색, 원래의 색이 아프리카에 있거든”이라는 이경규 친구의 말이 시작이었다. 결국, 김PD는 70일간의 아프리카 여행을 계획하고 아주 커다란 짐을 쌌다.

 

헉! Hug 아프리카칼 든 강도를 만나거나 사하라 사막에서 길을 잃어 노숙을 하는 등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순간도 있었다. 따뜻하게 데운 맥주, 녹슨 양철지붕의 물결, 우간다 여인들의 S라인, 남대문 시장보다 10배 큰 재래 노촌시장을 꽉 메운 사람들 등에서 느끼는 문화적 충격도 적지 않았다.빅토리아 폭포, 눈앞으로 야생동물이 지나가는 사파리 등의 장연은 “헉!” 소리가 절로 나오는 장관이었다. 이 모든 아프리카는 고스란히 김PD의 가슴과 스케치북에 자리 잡았다. 이렇게 그리고 찍은 삽화와 사진 등은 <헉!아프리카 Hug Africa>라는 책으로 출간됐다. “뽐낼 만한 정도의 솜씨는 아닌데…. 책 판매에 따른 저작권료가 아프리카 어린아이들이 마실 우물 파기에 쓰인다고 하길래 마음이 동했다”고 털어놓는 김PD가 그리고 찍고 쓴 이 책이 출간된 후부터 사람들은 그에게 묻곤 한다. “아프리카 여행에서 무엇을 얻어 왔는가?” “프로그램 만드는 데 어떻게 반영될 것인가?” “PD라는 직업에 어떤 모티브로 작용할 것인가?”

 

“아프리카가 저에게 주는 의미는 새로운 세상이 있다는 인식, 그리고 우리가 사는 세계에 대한 몰입을 깨주는 정도예요. 새로운 것에 대한 열망, 한정된 시각의 확대죠. 사물을 바라보는 시야가 넓어지고 각도가 다양해졌거든요.” 늘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PD에게, 이것만큼 큰 수확이 어디 있겠는가.

 

새로운 것과 내 생각에 대한 신념

 

현재까지도 예능 프로그램의 단골 메뉴인 몰래 카메라, ‘양심 냉장고’를 탄생시킨 ‘이경규가 간다’의 <일요일 일요일 밤에>, ‘하자하자’ ‘책책책, 책을 읽읍시다’ ‘아시아 아시아’ 등의 <칭찬합시다> <전파견문록> 등 김영희 PD가 지금까지 심한 저항과 반대를 무릅쓰고 자신의 생각을 관철시켜 실패한 경우는 없다.

 

“스스로가 반드시 지켜야할, 새로운 것에 대한 아주 구체적이고 간단한 지침이 있어요. 다른 사람이 한 건 안한다는 겁니다. 그리고 어떤 반대와 저항에도 일관되게 하고 싶은 것들을 끝까지 하는 거죠. 그 결과에 대한 책임 역시 100% 저의 몫일 겁니다. 새로운 것에는 저항과 반대가 당연히 심할 수밖에 없어요. 저항이 심할수록 자신의 생각이 옳다는 신념을 가지지 않으면 이뤄낼 수 없죠.”

 

김영희 PD의 귀환에 방송가는 물론 시청자들 역시 큰 기대를 걸고 있다. 새로운 예능의 세계가 열릴 것처럼 기대를 거는 이들에 김PD는 “아직 정해진 건 없지만 새로운 것을 할 것”이라고 털어놓는다.

 

“최근 버라이어티의 트렌드는 아이러니하게도 리얼리티로 일원화된 느낌이에요. 늘 강조하는 것이지만 가장 좋은 연출은 연출한 것 같지 않은 연출, 연출하지 않은 연출이에요. 하지만 현재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문제는 너무 한쪽으로 쏠려 있다는 겁니다. 버라이어티라는 말처럼 다양하게 접근하는 것이 PD들의 숙제죠.”

 

새로운 프로그램 기획에 고심하고 있는 김 PD는 ‘본질’을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인다. 프로그램에서 ‘재미’와 ‘즐거움’은 중요한 요소다. 하지만 시청자들이 원하는 핵심은 아니다. 사람, 특히 한국 사람의 가슴 속에 가진 무언가, 이것이 바로 핵심이고 본질이기 때문이다. 그 실체를 알 수 없는 핵심과 본질을 찾는 것, 그리고 이를 정확하게 전달해 보는 이들에게 진정한 카타르시스를 선사하는 것 역시 PD의 숙명이다.

 

“재미있다는 건 여러 가지를 담고 있어요. 사람들은 막 웃어도 재밌었다고 하고 막 울어도 재밌었다고 하거든요. 그것이 무엇일까를 고민해야 합니다. 재미와 감동을 잘 버무리면 돼요. 그럼 두 배로 재밌어지거든요.”

 

김영희 PD의 필모그래피가 새로운 형식과 즐거움, 공익, 감동 등을 잘 버무린 것들인 이유다. 김 PD는 시간이 날 때면 혼자서 압구정동이며 청담동, 홍대 등은 물론 달동네, 버스종점, 시골길 등을 돌아다닌다. 어느 날은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어떤 날은 자가용을 타고 다닌다. 최신 트렌드를 읽는 것은 물론 변함없는 것들에 대한 관심 역시 놓치지 않는다. 예능PD에게 너무 한쪽으로만 치우치지 않는 균형감은 매우 중요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최선을 다하면 실패도 즐겁다

 

영희 PD는 많은 이들이 어렵다고 느끼는 것을 쉽게 한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것이 그렇고 쉰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에 ‘국장’ ‘연합회장’ 고위 관리직 등을 마다하고 현장 PD로 돌아온 것도 그렇다. 모든 것을 놓고 혈혈단신 아프리카를 여행하는 것도, 돌연 히말라야로 날아가 스태프 한 사람과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까지 5천 미터 등반을 감행하는 것도 그렇다. 엄청난 반대와 저항을 무릅쓰고 자신의 신념을 지켜나가는 것도, 최선을 다한 후 결과에 대한 책임을 온전히 떠안는 모습 역시 그렇다.

 

김영희PD가 실패나 안좋은 일에도 “그럴 수도 있지”라고 너그러울 수 있는 이유는 태생이 낙천적이기도 하지만 최선을 다한 후의 결과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늘 허허거리는 김PD지만 현장에서는 엄격하고 까다롭기로 유명하다. 스스로의 아주 작은 실수도 용납하지 않고 채찍질하는 모습에 스태프들까지 극도로 긴장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지금은 시청자의 사랑을 듬뿍 받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데 집중할 겁니다. 저에게 쏟아지는 기대와 관심에 큰 걱정이 앞서지만 전 새로운 걸 할 겁니다.”

 

5년만에 현장에 돌아온 김영희PD는 연내에 새로운 프로그램을 방송하는 것, 그리고 시청자들의 사랑을 듬뿍 받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사람들을 웃게도, 울게도 할 ‘김영희표’ 프로그램의 또 다른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