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에 온 느낌이죠. 아니지, 고향에 온 것 맞죠! 하하~” 강원도 평창에서 열린 제 8회 대관령국제음악제를 찾은 첼리스트 고봉인 씨는 ‘고향에 왔다’는 소감을 밝히며 환하게 웃었다. 그의 평생의 멘토인 첼리스트 정명화 씨가 음악감독을 맡아 더욱 특별한 자리였던 올해 대관령국제음악제. 평창의 싱그러운 무공해 하늘빛을 닮은 고봉인 씨를 만났다.

 

현명한 꼬마의 현명한 선택

 

26세의 젊은 첼리스트 고봉인 씨는 올해 대관령국제음악제 ‘저명 연주자 시리즈’에 초청되어 특유의 아름다운 연주로 국내외 언론의 많은 관심을 받았다. 7년 전 ‘라이징 스타’ 프로그램에 초청된 후 다시 찾아온 반가운 자리. 고 씨가 한층 더 주목을 받는 이유는 그만의 독특한 이력 때문이기도 하다. 그는 현재 미국 프린스턴대 분자생물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과학자인 동시에 차이코프스키 국제청소년콩쿨 첼로부문 1위(1997년)를 수상한 촉망받는 젊은 첼리스트인 것. 세계적으로도 거의 찾기 힘든 경우다. 고봉인 씨에게 하나도 하기 힘든 일을 두 개나 하는 것에 대해 질문을 던지자 시원스런 대답이 돌아온다.

 

“많은 분께서 이 점을 궁금해 하시는데요. 제게는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영향으로 실험실에서 여러 가지 신기한 실험을 많이 접하면서 과학에 대한 호기심이 싹텄고요. 피아노를 전공하신 어머니의 영향으로 음악을 좋아하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아버지(카이스트 고규영 교수)께선 제가 음악가의 길을 걷기를 바라셨고, 어머니께선 과학자의 길을 걷기를 바라셨는데요. 저는 ‘둘 다 좋으니 둘 다 하면 되지’라고 생각하고 그렇게 걸어 왔답니다.” 아버지는 어머니를 닮기를, 어머니는 아버지를 닮기를 바랐으나 소년 고봉인은 솔로몬의 지혜를 발휘해 둘 다 하겠다고 대답했다. 그에게는 과학도 흥미로웠고 음악도 재미있었던 것이다.

 

‘내 인생의 멘토’ 정명화 선생님

 

1994년 한국예술종합학교 예비학교 시험을 본 고봉인 씨, 원래는 누나의 오디션 현장에 따라 간 것이나 ‘온 김에 오디션을 보라’는 말에 준비도 없이 오디션에 나섰다. 그때 그를 발탁하여 가르친 사람이 바로 첼리스트 정명화 씨다.

 

“정명화 선생님은 제게 있어 ‘정신적 어머니’이십니다. 제가 오늘날 두 가지 길을 동시에 걷고 있는 것은 정명화 선생님의 영향이 큽니다. 정 선생님은 저에게 항상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음악에만 몰두해 다른 것을 배우고 익히는 것을 게을리 하면 안된다고요. 연주자이기 이전에 바른 마음을 가진 균형있는 인간이 되어야 한다고 말이죠. 그래서 선생님은 학교 공부나 운동, 친구관계에도 소홀하면 안된다고 말씀하셨어요. 제가 일반 고등학교에서 음악과 학업을 동시에 병행하고, 대학에서도 복수 전공으로 첼로와 생물학을 공부하며 두 가지 꿈을 동시에 키워 올 수 있었던 것은 저희 가족의 지원과 정명화 선생님의 격려 덕분입니다.”

 

대관령국제음악제 정명화 음악감독은 어엿하게 자란 제자를 자랑스러워 하며, 그의 무대를 흐뭇하게 지켜 보았다. 고봉인 씨 또한 ‘선생님’ 앞에 서서 그 어느 때보다 열성적으로 연주에 임했다고 한다.

 

 

음악과 과학, 두 개의 무게 중

 

그는 독일에서 고교 과정을 마친 후 미국 하버드 대학으로 진학했다. 하버드대와 뉴잉글랜드음악원의 복수학위 프로그램에 따라 생물학과 첼로를 동시에 전공했다. 익히 알려져 있듯 아이비리그 대학의 학업량은 상상을 초월한다. 하버드 대학의 붉은 문장은 학생들이 흘린 코피로 물든 것이라는 농담이 있을 정도.

 

고봉인 씨는 두 가지 일을 하는 것이 시너지 효과를 낸다고 했다. “솔직히 어려운 순간도 많았어요. 힘든 일정이 겹치거나 할 때면 ‘내가 괜히 두 가지 일을 다 한다고 덤빈 건 아닐까’ 스스로 회의도 들었지요. 그렇지만 두 가지 일을 하기 때문에 더 좋다고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음악을 연주한다는 것은 무척 고독한 작업이거든요. 이에 비해 과학은 동료 학자들과 함께 협력하여 같이 연구를 하는 일입니다. 두 가지 일이 상호보완적으로 저에게 좋은 영향을 끼치는 것 같아요. 너무 고독하거나 너무 번잡스럽지 않게 균형을 맞춰 주는 것 같습니다.”

 

이번 음악제 참여를 위해서 박사과정 학생에게 주어진 2주 간의 휴가를 모두 사용했다는 그는 “제가 자리를 비워도 실험실의 동물들은 계속해서 세포 분열을 하잖아요? 제가 연주하러 가니까 한 2주만 쉬고 있으라고 할 수도 없고…”라며 웃는다. 다행히 실험실 동료들과 지도교수는 ‘첼리스트 고봉인’의 든든한 지원군이다. “연구 진행을 위해 동료들과 이메일로 서로 계속 의견을 주고받습니다. 함께하는 친구들에게 정말 고마워요. 이번 음악제에 참가해서 낮에는 여러 좋은 음악가들과 연주하고, 밤에는 실험실에서 날아 온 메일을 체크하며 프로젝트 진행에 참여하는 것이 참 즐거웠습니다. 둘 다 저에게 중요하고, 즐거운 일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했죠.”

 

내 인생의 사명을 이루기 위하여

 

고봉인 씨에게 음악과 과학은 그의 삶이 가진 최고의 목표를 성취하게 하는 수단이다. “저는 첼리스트 요요 마를 무척 좋아합니다. 그는 자신의 연주를 훌륭한 ‘도구’로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세계의 전쟁과 빈곤, 질병과 무지를 퇴치하는 수단으로 말이죠. 저는 제 연구와 연주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어요. 제가 의학이 아닌 생물학을 전공한 까닭도 제가 연구하는 질병의 기전과 치료법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더 보편적인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아서였습니다. 연주할 때 마음가짐도 마찬가지에요. 더 많은 사람들이 제 연주를 접하고 위안과 기쁨을 가지길 바랍니다.”

 

작곡가 윤이상의 탁월한 해석자로 한국 현대음악을 소개하고, 평양에서 연주하기도 한 고봉인 씨는 “한국 연주자로써 한국 음악을 알리는 것은 저의 당연한 소명이죠.”라고 말한다. 자신의 연주가 한국인으로써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것은 물론 나아가 통일의 작은 밑거름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열정, 연주와 연구 사이의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것은 힘들어도 즐겁지요. 앞으로도 지금처럼 모든 순간을 즐기면서 살았으면 합니다. 연주와 연구 모두 저에게는 어느 하나도 없어서는 안될 귀한 일이니까요.”

 

첼리스트 과학자 고봉인 씨, 그의 연주와 연구 사이에는 아름다운 열정이 있다. 자신의 손으로 세상을 어루만져 조금 더 좋은 곳으로 만들고 싶다는 바람이 있다. 그의 반짝이는 의기가 앞으로 어떻게 성장해 나갈지, 한층 더 깊어진 음악가이자 과학자 고봉인 씨의 모습은 어떠할지 함께 기대해 봐도 좋을 것 같다.

 

글_ 박세라 사진_ 대관령국제음악제 홍보팀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