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문화 현장을 가다 ① 부산 보수동 책방골목 다시보기

 

세계적인 책 마을인 영국 웨일스의 ‘헤이온와이(hay-on-wye)’를 창시한 리처드 부스(Richard Booth)씨가 아시아 최대 규모 책 축제인 ‘파주북소리 2011’ 특별강연을 위해 내한했다. 부스 씨는 지난 10월 1일 파주북소리 빅토크(Big Talk) 첫 번째 강연 ‘헌책방 왕국 헤이온와이 이야기’에서 지식의 보고로서의 헌책의 가치, 그리고 책에 대한 자신의 열정 등을 밝혔다. 10월 아르떼진 테마기획 두 번째 이야기는 ‘헌책왕’ 리처드 부스 씨와의 만남을 전한다.

 

지성과 지식을 대변하는 존재span>

 

런던에서 출발하는 기차를 타고 하루 종일 달려간 후 일일 3회 다니는 버스를 타고 다시 몇 시간, 굽이굽이 웨일즈 산골짜기로 들어가면 세상의 모든 애서가들을 위한 책 왕국 헤이온와이가 나타난다. 동네 전체가 헌책방, 그리고 자유로운 독서가 가능한 서가로 이루어진 헤이온와이는 영국 옥스퍼드 대학을 졸업한 괴짜 수재 리처드 부스 씨의 열정이 만들어 낸 거대한 헌책의 나라다. 책마을 헤이온와이를 ‘헌책 왕국’으로 선포하고 그곳을 통치하는 ‘헌책왕’이 된 리처드 부스 씨, 일흔셋의 그가 파주북소리 축제현장을 찾았다.

“군인이셨던 부친은 ‘내 일의 1%는 나라 지키는 것, 나머지 99%는 책 읽는 것’이라 말씀하실 정도로 독서를 좋아했습니다. 세계 각지를 다니며 근무하셨지만 항상 저희 형제들에게 책이 가득한 서재를 만들어 주셨어요. 덕택에 저희 형제들 모두 책과 관련된 일을 하게 되었지요.” 그가 가진 책에 대한 열정, 지칠 줄 모르는 독서욕은 대물림된 것이었다. 이러한 열정에 힘입어 1960년대 초반 리처드 부스 씨는 웨일스의 시골 마을 헤이온와이의 낡은 소방서 건물을 사들여 헌책을 다루는 서점을 열었다.

“새책은 자본의 논리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 따라서 원하든 원치 않든 자국의 경제를 상승시키는 역할을 담당해야 하죠. 하지만 헌책은 다릅니다. 세계를 돌아다니며 자국의 경제와 문화를 전파하는 역할을 하고요. 인류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합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헌책은 순수하게 지식을 전달하는 매개체가 되지요. 또한, 헌책은 자본의 논리로부터 자유로울 뿐 아니라 친환경적인 존재이기도 하죠.” 리처드 부스 씨는 헌책이 가진 장점들을 설명하며, 생명력을 지닌 헌책들이 ‘현역 근무’하고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던 헤이온와이 창립 당시의 마음을 전했다.

 

매스미디어의 폐해에 저항하라

 

스스로 ‘헌책왕 리처드’라고 명명하고 헌책이 가득한 마을을 꾸민 리처드 부스 씨. 어떤 사람들은 그를 일컬어 괴짜라고 했지만, 헌책을 사랑하고 책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은 사람들은 머나먼 헤이온와이 마을로 꾸준히 찾아왔다. 오늘날 헤이온와이는 40여 개의 고서점이 성업 중인 명실상부한 ‘책의 나라’로 성장했다. 헤이온와이 축제는 전 세계의 애서가들이 찾는 세계 최고의 도서축제가 되었으며, 웨일스 관광수입의 상당 부분을 책임지고 있다. 또한 벨기에, 미국, 프랑스, 독일 등에도 헤이온와이를 벤치마킹한 마을들이 생겨났다. 부스 씨는 ‘국제 책마을 기구’를 통해 책마을을 만들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실질적인 도움과 조언을 아끼지 않고 있다.

리처드 부스 씨는 자신이 헌책 마을을 만든 배경에는 매스미디어의 폐해에 대항하고자 하는 마음도 있었다고 말했다. “이 시대의 책은 매스미디어의 통제를 받고 있습니다. 매스미디어가 우리의 의식을 원하는 방향으로 획일적으로 이끌어 가는 것은 무서울 정도지요. 또한, 정보가 홍수처럼 밀려와 무엇이 정말 나에게 필요한 정보인지 알 수 없어요. 헌책은 이미 검증된 정보를 담고 있죠. 독자에게 무언가를 강요하지 않으니 선택적이고 비판적으로 내가 필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수단이 돼요. 저는 헌책방을 제 나름 ‘체제에 저항하는’ 수단으로 생각했습니다. 헤이온와이 축제를 열 때도 기업의 광고성 협력이나 정부의 과도한 간섭을 받아들이지 않았지요. 그럼으로써 경제적인 어려움도 없지는 않았지만,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지식의 가치 있는 순환

 

“일본에서 수입한 도자기를 본 적 있는데, 도자기보다도 그것을 싼 신문지와 낯선 활자들이 더욱 신기했습니다.”라고 헌책을 처음 만난 어린 시절의 기억을 떠올린 그는 “헌책은 지성을 대표한다.”고 정의했다.

“헌책은 도서관, 지식의 보고, 역시와 시간을 담은 존재입니다. 뿐만 아니라 ‘지식은 모두에게 공평해야 한다’는 명제를 실현해 주죠. 헌책은 ‘가난한 사람들의 경제’에요. 지식이 비싸고 구하기 힘들다면 지식에서 소외되는 사람이 생기지 않겠어요? 지식은 비싸서는 안됩니다. 헌책은 합리적인 가격에 원하는 지식을 얻을 수 있도록 도와요. 뿐만 아니라 헌책은 경제를 살리기도 합니다. 실제로, 헤이온와이 마을을 꾸리기 위해 전세계를 돌아다니며 헌책을 사 모으고, 영국 내의 헌책을 세계로 유통시키기도 했는데요. 이 과정에서 헌책을 수출입하는 항만 컨테이너 산업이 부흥했어요. 헤이온와이 마을을 찾는 관광객들로 인한 관광 수입도 적지 않지요. 이 모든 것이 헌책으로 인한 ‘긍정적인 순환’인 것입니다. 작게는 누구나 저렴한 가격에 정보를 얻을 수 있고, 크게는 세계적으로 지식과 경제의 순환, 친환경적 지식 순환의 고리를 연결하는 것이지요.”

리처드 부스 씨는 헌책 한 권이 만들어 내는 지식의 선순환에 대해 설명하며 “가치 있는 고서적 한 권이 사람과 자본, 그리고 지식을 서로 교류케 합니다.”라고 말했다. 지식은 이러한 교류를 통해 영원히 죽지 않고 더욱 새롭게 계속하여 살아 나간다는 것이다. 또한 아이패드, 킨들 등의 새로운 뉴미디어 전자책에 대해서도 “사용해 본 적은 있으나 크게 의미가 있다고 생각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단순히 정보 그 자체만을 전달한다는 측면에서는 전자책이나 스마트기기가 의미가 있겠지요. 하지만 헌책은 정보만을 전달하는 역할이 아니라 지식을 순환시키는 역할을 하지요. 그래서 저는 전자책이 헌책의 역할을 담당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라고 밝혔다.

 

지금 우리의 ‘헌책 문화’는 과연

 

“지팡이를 짚고라도 이곳의 고서점을 둘러보겠습니다.”라며 한국의 헌책방 문화에 지대한 관심을 표명한 리처드 부스 씨. 그는 “책의 가치를 높이는 파주북소리 축제에 참여하게 되어 영광입니다. 축제 기간 동안 출판도시 곳곳을 둘러보며 헌책방도 방문하고, 한국어로 된 책도 많이 접해 보고 싶습니다.”라고 말했다.

책에 대한 열정으로 하나의 왕국을 세우고, 세계를 순환하는 거대한 지식의 흐름을 만든 리처드 부스 씨. ‘헌책왕’이 바라본 오늘날 우리 도서산업과 책 문화는 과연 어떠한 모습일까. 정보의 매개이자 지식의 보고인 헌책을 ‘살아서 헤엄치게’ 하는 우리만의 방법이 있다면 어떤 것일까. 리처드 부스 씨와의 만남은 이와 같은 화두를 던져 준 자리였다.

 

글_박세라 사진_파주북소리조직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