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교육을 통해 본 문화교육

이야기 손님 |정현선|서울대 국어교육연구소 선임연구원<!– | nanaoya@hanmail.net–>


문화교육과 미디어 교육



‘문화교육’이라는 것은 더 이상 우리에게 낯선 말이 아닙니다. 이제는 문화교육이 ‘무엇’인가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문화교육을 ‘어떻게’, ‘어떤 방향으로’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와 계획들이 논의되어야 할 시점인 것 같습니다.



먼저 미디어교육을 통해 본 문화예술교육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그 동안 교육 현장에서 진행되어왔던 ‘문해력(literacy) 교육’은 문자나 음성 언어로 된 텍스트를 읽고 해석하는 의사소통에 국한되어 진행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다양한 전자매체를 통해 전해지는 메시지가 우리 삶을 둘러싸고 있는 만큼, 다양한 미디어를 통한 의사소통 능력 즉 미디어 리터러시(media literacy)에도 주목해야 합니다. 미디어 그 자체도 언어처럼 이해할 수 있고, 또 이해해야 한다고 보는 것이죠. 미디어의 종류가 다양하고, 표현 언어도 다양해서 그 범위를 어디까지 고려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아직 의견이 분분합니다. 그러나 문해력(literacy)이란 단순히 문자를 해독하는 것이나, 텍스트 상의 의미를 읽어내는 것만이 아니라는 점, 즉 이것은 더 나아가 사람들의 경험들이 소통될 수 있는 사회적인 리터러시로서의 의미가 중요한 것이라는 점만은 분명합니다.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은 바로 이런 측면에서 고려되어야 합니다.



저는 오랫동안 국어교육에 대한 공부를 해오던 중, 문화연구의 시각에서 교육을 고민하게 되면서 영국으로 갔고, 거기서 미디어 교육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국어교육학’을 공부할 때는 아이들이 문학적인 경험을 통해서 사회와 자기 자신에 대해서 더욱 잘 알게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공부했었습니다. 제도에 의해서 예술적 가치를 공인 받은 텍스트만 해석하도록 배우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 스스로 자신의 이야기를 생산하고 만들어 내면서 자기 방식으로 세상에 참여하게 되는 과정을 경험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바래왔지요. 그래서 저는 자기의 이야기를 소통하는 ‘교육적인 경험’들에 대해서 연구해왔고, 이런 점에서 국어교육과 미디어 교육의 연계에 대해서도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미디어 교육이라고 하면 흔히 ‘미디어에 대한(about) 교육’과 ‘미디어를 통한(through) 교육’이라는 두 가지 측면을 생각하게 됩니다. 여기서 ‘미디어를 통한’ 교육은 미디어를 통해 다른 것을 가르치려는 것이고, 이런 접근은 미디어를 교육의 수단으로 삼는 교육공학적인 것입니다. 문학을 가르치기 위해 수업시간에 아이들이 좋아하는 영화를 보여주는 것을 예로 들 수 있는데, 이것은 본격적인 미디어교육이 아닙니다. 미디어교육은 미디어 자체의 소통적 측면에 대해 다루는 것이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우리는 ‘미디어에 대한 교육’을 통해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 하는 질문을 던져보아야 합니다. 저는 이 점이 바로 미디어교육이 ‘문화교육’과 연결되는 지점이라고 봅니다. 또, 우리가 미디어가 교육 영역에 개입할 때 인지해야 할 점 중의 하나는 미디어란 세계에 대한 어떤 ‘관점’을 가진 ‘매개된 소통’이라는 점입니다. ‘매개된 소통’을 강조하는 것은 어떤 소통이든지 관점과 해석이 있는 매체에 의해 매개된다는 점도 인지해야 함을 뜻합니다. 사실, ‘미디어 교육’이라는 용어에서 미디어라는 말 자체가 매개한다는 뜻인데, 이는 ‘우리의 관점’, ‘생각’, ‘느낌’이 어떤 매체에 의해 매개되는데, 바로 그 매개되어진 것이 전달되고 있다는 것이죠. 때문에 매개된 관점과 의도를 파악하고, 자신의 관점을 미디어를 통해 표현해 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미디어교육에서 다뤄져야 할 핵심 부분입니다.

미디어 교육은 매체를 가지고 자신을 표현하고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문화교육으로서의 미디어 교육’이 되어야 합니다. 따라서 어린이와 청소년으로부터 출발하는 미디어 교육은 우선 활동적이고 재미있어야 하며,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고 민주적인 소통방식을 기본으로 하여야 합니다. 청소년들의 관심과 흥미로부터 출발하되, 단순한 텍스트 읽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텍스트로부터 문화를 읽어내고 거기에 덧붙여 자신의 경험을 표현해 낼 수 있게 하는 적극적인 문화교육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덧붙여, 다양한 입장 간의 대화와 논쟁을 통해 ‘계몽’이 아닌 ‘교육’을 실천하고 능동적 의미생산을 도와줄 교육적 기획을 마련해야 합니다. 가르침과 배움은 사회적으로 구성되는 것이고, 이 때 배움이란 특정한 지식과 실행 능력을 가진 공동체에 참여하는 과정입니다. 이러한 관점을 가지고 미디어에 대한 지식과 이를 자신의 소통 도구로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을 배우는 것, 이 과정에서 각자의 경험과 지식, 기술을 매개로 세대 간의 대화를 실현하고, 이를 통해 새로운 미디어 문화를 만드는 데 참여할 수 있어야 합니다.

미디어와 청소년 문화와의 관계

청소년과 미디어에 대해 논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청소년과 미디어의 관계를 부정적이거나 보호해야 할 관계로 볼 것인지, 긍정적/낙관적으로 보아야 할 것인지에 대한 문제인 것 같습니다. ‘보호주의’의 관점은 미디어의 악영향으로부터 아이들을 보호하자는 도덕주의 측면에서 바라본 내용이며, ‘낙관주의’적 관점은 미디어의 긍정적인 역할에 대한 기대를 바탕으로 청소년들에게 적절한 미디어 환경을 제공함으로써 미디어의 ‘수동적 피해자’가 아닌 적극적, 능동적, 비판적 의미 생산자인 수용자/청소년으로 훈련시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현명한’ 수용자에 대한 강조가 미디어 영향에 대한 부정으로 흐르는 역편향을 보이는 것도 사실입니다.

예를 들어, ‘N세대’, ‘W세대’, ‘P세대’ 등은 새로운 세대의 특성을 새롭게 등장한 미디어  문화와 연관지어 이해하려는 어른들의 담론이라 할 수 있습니다. N세대는 인터넷을 통해 자유롭게 경계를 넘나드는 청소년의 모습을 보려 한 것이고, W세대는 인터넷 문화가 월드컵이라는 사회적 계기를 통해 ‘광장’으로 나오게 된 것에 환호한 것이며, P세대는 이러한 새로운 미디어 문화를 통해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청소년의 모습을 그린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낙관적인 전망 한편에는 청소년들에 대해 여전히 게임에만 빠져 있고 문법에 맞지 않는 통신 언어의 재미에 빠져 있는 ‘사이버폐인’으로 보는 비관적인 시각도 존재합니다. 이러한 상반된 이해는 사실 어른들이 청소년들에 대해, 그리고 미디어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에 나오는 것입니다. 인터넷 이용에 관한 최근 통계를 보면 10대, 20대의 이용률은 90%를 넘는데 비해 50대의 경우 25%가 채 안 됩니다. 이처럼 90%와 25%라는 대조적인 숫자는 왜 이와 같은 양극단적인 이해가 나타나는지에 대해 시사하는 바가 있습니다.



그러나 청소년과 미디어의 관계를 부정적으로 혹은 긍정적으로 볼 것인가에 대해서는 그 어느 것도 정답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물론 미디어가 청소년에게 끼치는 영향을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청소년과 미디어의 관계는 이분법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며, 청소년들이 하는 행동이나 사고의 원인은 단순히 미디어 한 가지 때문이라기보다 복합적인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현실적으로 더욱 필요한 것은 세대간의 갈등을 극복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연령이 어릴수록 미디어에 대한 거부감이 별로 없는 데 비해 연령이 높은 세대에서는 미디어에 대한 거부감이 여전히 존재하는데 그 격차는 좁혀지지 않고 있습니다. 어쩌면 청소년을 위한 미디어 교육도 중요하지만, 동시에 그 윗세대에 대한 미디어 교육도 이에 못지않게 필요한 것이 아닌가 합니다.

미디어는 자신을 표현하는 매체이며, 사회와 소통하는 매개이고, 그 자체로 대화의 방법이 되기도 합니다. 미디어를 활용하면서도 동시에 공격적이고 부정적인 미디어 환경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법도 알아야 하겠지요. 또한 미디어의 영향에 대한 판단은 아이들 자신의 기준과 반응을 기초로 해야 하고, 그들 자신을 미디어 향유 주체로 인지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미디어에 대한 접근 기회, 향유할 기회가 모든 아이들에게 동등하게 주어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