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사회문화예술교육의 현장을 가다③] 군부대의 새로운 변화와 시도, 군 장병 문화예술교육

이번 호 <사회문화예술교육> 기획연재에서는 올해 하반기 처음으로 실시될 ‘군 장병 문화예술교육’에 대해서 소개한다. 군 장병 문화예술교육이 기획된 배경과 준비 과정 및 앞으로 실시될 군 장병 문화예술교육의 내용을 살펴봄으로써, 군대라는 특수한 조직에서 문화예술교육이 가지는 의미와 전망을 알아보고자 한다.          [편집자주]

 

2006년 하반기부터 군대에서 ‘문화예술교육’이 시행될 예정이다. 상명하복(上命下服), 상의하달(上意下達)의 지휘체계를 통해 전투력을 강화하고, 적의 출현으로부터 국가를 수호할 것을 유일한 목적으로 가지는 가장 오래된 관료 조직중의 하나인 군대. 과연, 군대에서의 문화예술교육은 가능할까? 문화예술교육을 통해 군대는 드디어 변화할 수 있을까?

군 장병 문화예술교육, 왜 기획되었나?

군 문화예술교육의 필요성이 처음 대두된 것은 장병들의 특성이 과거와는 많이 달라졌다는 점을 파악하면서부터였다. 한국 가족의 형태가 대가족 중심에서 핵가족 중심으로 변화하게 되다 보니 이들이 자라난 배경은 전과는 많이 달라졌고, 그 결과 이 시대의 젊은이들의 개인주의적 성향은 전보다 짙어지게 된 것이다. 이 점을 고려할 때, 엄격한 집단주의 사회인 군대가 이들에게 적응하기 어려운 조직인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군 문화예술교육의 필요성은 바로 이 점에 주목하여, 군대 조직에 대한 적응을 보다 원활히 하기 위한 방편의 하나로 강구되었다. 군대라는 엄격한 조직생활에 보다 잘 적응 할 수 있도록 정서적인 영역에서의 자원을 문화예술교육을 통해서 하자는 것, 나아가 이것은 결과적으로 군대조직에 대한 적응력의 향상과 장병 상호간의 단결력 향상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판단이 군 부대 문화예술교육이 출현하게 된 배경이다. 그리고 이에 더하여, 주 5일제 실시와 함께 대두된 장병들의 건전한 여가 활용 보장 문제와 군대내 인권과 복지가 강조되는 시대의 흐름 역시 군 부대 내 문화예술교육 출현의 또 다른 배경이 되었다.

그러나 ‘군 부대 내 문화예술교육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별다른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해도, 상부의 명령과 하부의 복종에 의해서 기계처럼 움직이는 군대의 특성상, 문화예술교육이 얼마만큼 효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적지 않은 의심이 남아 있는 것이 사실이다. 왜냐하면 문화예술교육에 있어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참가자의 자발성이자 연속성이기 때문이다.   

군 장병 문화예술교육과 정훈 교육,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른가?

군대에는 이미 ‘정훈교육시간’ 이라는 것이 있다. 책을 읽고, 영상물을 보고, 직접 쓰고 만들고 토론한다는 점에서 형태적으로는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의 진행시간과 크게 다르지 않은 시간이기도 하다. 그러나 형태적으로 유사한 이 두 프로그램은 각 프로그램이 무엇을 목적하고 있는가에 따라 확연히 구분된다. 문화예술교육이 장병들의 정서적인 부분에 대한 배려와 감성 교육을 위해 마련된 시간인 데에 반하여, 정훈 교육은 ‘정치훈련’ 내지는 ‘정치 사회화’를 목적으로 마련된 시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훈 교육의 내용은 자유민주주의의 우월성을 강조하는 이념교육을 중심으로, 군인정신, 군대윤리, 충효예(忠孝禮) 교육 등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는 강한 군인, 강한 군대 육성이라는 명료한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즉, 대한민국의 군인으로서 가져야 할 정신 무장을 위해서 마련된 시간이다.


육군 병사들이 기거하는 일반적인 막사 내부의 모습

조직의 생리상, 군인이라는 신분에 대한 사명감과 책임감을 유발하기 위하여 정훈교육이 실시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군인정신에 대한 교육이나 사회이념 혹은 정치사상에 대한 일방적인 교육이 그 어떤 군 장병에게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뙤약볕 아래서, 혹은 혹한 속에서, 혹은 힘겨운 전투훈련의 와중에 몸과 마음을 쉬게 할 수 있는 ‘비교적’ 편안한 시간이라는 점을 제외한다면 말이다. 이는 군 장병 문화예술교육의 효과적인 시행을 위해 정훈 교육과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방식의 접근이 요구된다는 점을 단적으로 시사한다.

육군본부 정책홍보실 소속의 이영노 중령은 정훈교육과 문화예술교육을 다음과 같이 비교한다. “목표로 하는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는 강한 군대 육성을 최종적인 목표로 삼는다는 점에서 정훈교육과 문화예술교육은 동일합니다. 다만, 기존 정훈교육은 그 자체의 목적이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는 전투원 육성에 있는 반면, 문화예술교육은 교육의 결과로서 정신정력과 전투력 향상을 기대될 수 있다는 점에서 둘의 성격은 매우 다릅니다. 또한 교육이 진행되는 방식에서도, 기존의 정훈교육의 경우 교관과 피교육생이 명확히 구분되는 주입식 교육이었으며 동시에 이론적인 내용에 대한 교육이 많았던 반면, 문화예술교육은 장병들이 직접 참여하는 체험 위주의 교육이 될 것입니다.”

군 장병 문화예술교육 정책, 그 진행 준비 과정은?

군 장병 문화예술교육 정책이 처음 마련되기 시작한 것은 2004년 11월 군 인적자원개발회의를 통해 처음으로 공식적으로 제기되면서 부터였다. 이어 2005년 9월부터 2006년 1월까지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에서 <군 장병을 위한 문화예술교육프로그램 운영방안연구>라는 이름의 연구 사업이 체계적으로 진행되었고, 2005년 12월에는 국방부와 문화관광부 사이에 MOU(Memorandum Of Understanding, 양해각서)가 체결되었다. 행정적인 준비가 이렇게 진행 되는 동안 군대에서는 현장에서의 목소리와 요구사항들을 취합해가는 작업이 진행되었다. 군 장병들을 대상으로 하는 문화예술교육의 필요성을 잘 인식시키고 널리 알리기 위한 초빙강연, 정훈장교들을 대상으로 하는 워크숍, 관련 자료의 보급, 문화예술교육 시범사업을 위한 부대선정 등의 작업이 체계적으로 진행된 것이다.


군 문화예술교육을 위한 회의에 군 장병, 문화부와 진흥원의 관계자, 문화예술교육 전문가들이 모였다.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하고 있는 정훈 사병들의 모습 .

한편, 문화관광부와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에서는 프로그램의 시행을 위한 구체적인 준비 작업이 진행되었다. 군 문화예술교육을 위한 실질적인 수요현황에 대한 조사, 영상, 음악, 연극, 문학, 미술, 무용 등으로 분류된 프로그램의 선호 장르와 육해공군 간의 부대별 특성들에 대한 파악 등이 진행 되었다. 또한 이와 동시에 그간 군 장병 대상으로 시행되었던 <2005 사회문화예술교육>의 사례들을 연구하고, 장르별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일 역시 함께 추진하면서, 군 장병 문화예술교육 진행을 위한 준비를 차곡차곡 진행한 것이다.

육군과 해군, 공군의 서로 다른 요구들

군 장병 문화예술교육이 시행되기 위해서는 크게 네 단위의 주체가 필요하다. 피교육자인 육해공군 현장의 장병들과 장병들의 요구사항을 파악하고 교육을 집행시킬 국방부, 그리고 사업을 기획하고 프로그램을 관리하며 예산을 지원하는 문화부와 진흥원, 끝으로 프로그램을 실질적으로 담당하는 문화예술교육 전문가들이 바로 그 주체들이다. 지난 6월, 이 주체들이 모두 참여한 부대 방문이 있었다. 각자의 위치에서 이 사업을 위해 자신들의 역할을 수행하던 이들이 이 사업의 문제점들과 요구사항을 다시 점검하는 자리였다. 그 날의 자리에서는 부대 현장의 특성에 대한 논의는 물론, 앞으로 진행될 군 장병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의 지원방향에 대해서도 많은 이야기들이 나누어졌다. 특히, 육군 해군 공군별로 다르게 드러난 각 부대의 요구를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었던 점은 그 날의 자리가 남긴 훌륭한 성과 중의 하나였다.  

우선 육군의 경우에는 장병들이 영화와 대중음악, 연극 등에 높은 선호도를 보였다. 육군의 경우, 부대가 지역적으로 넓게 분포되어 있고 지역문화기반 시설과 밀접한 지리적 이점을 가진 부대가 많기 때문에, 이 점을 활용하여 지역과의 협력 및 연계를 통한 부대 내 문화예술교육의 활성화 방안 등이 주로 논의되었고, 대학시절 동아리 활동 경험이 있는 병사들을 주축으로 한 군대-대학 간 제도적 연계 군 장병 문화예술교육 활성화의 가능성도 논의되었다. 그러나 피 교육 대상인원이 매우 많은 수인 것에 반하여, 교육에 필요한 공간과 설비 전문 인력과 재원이 매우 부족하다는 점은 현실적은 약점으로 지적되기도 했다.

해군의 경우는 현재 모 기지인 진해지역을 중심으로 군 장병 문화예술교육 지원 사업이 추진 중이다. 해군의 경우, 함대와 육상기지, 충무공 리더십센터 등 다양한 형태의 문화 활동이 가능한 시설이 이미 마련되어 있지만, 병사들의 적극적인 관심이 부족하다는 점이 현재의 문제로 지적되면서, 병사들의 적극적인 관심을 어떻게 유도해 낼 것인가에 관한 논의가 주로 진행되었다. 가능하다면 폭넓은 형태의 문화예술교육을 향유하기를 원하는 육군 장병들의 경우와는 달리, 해군의 경우는 프로그램 자체에 대해서 상대적으로 수동적인 관심을 보였는데, 이는 해상생활과 강도 높은 육체노동을 하는 상황에 처해 있는 해군만의 특성에서 기인하는 차이였다. 많은 이들이 이 점에 대해 주목하였고, 해군의 경우, 특히나 환경을 고려한 내실 있는 문화예술교육프로그램 개발 및 적용 필요하다는 결론에 뜻을 함께 하였다.


해군 함정 내부의 막사 모습. 육군이나 공군의 일반적인 막사모습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해군만이 가지는 이와 같은 특성에 대해, 해군 부대를 방문하여 공연을 펼친 적이 있는 생태주의 퍼포먼스 그룹 <노리단>(산업 폐자재를 활용하여 악기를 만들어 새로운 개념의 음악을 창조, 공연, 보급하는 퍼포먼스 단체)의 안석희 예술 감독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장병들이 문화예술교육을 통해서 얻고자 하는 것은 자아실현 혹은 자아계발과 같은 거대한 것이라기보다는 ‘문화적 욕구 해소를 통해 보다 즐거운 함 내 생활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처럼 보다 일상적이고 사소한 것이리라 생각합니다. 이를 위해 노래방이나 PC방 등 기본적인 시설이 설치되어 있기는 하지만, 병사들이 이런 시설에 적극적이지 않았다는 점은, 사병들의 욕구가 전과는 근본적으로 달라졌다는 점을 드러내 주는 것 아닐까요? 병사들의 정서와 감성에 영향을 끼칠 수 있을 만한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이 부대 내에서 시행될 수 있으려면, 달라진 욕구를 잘 읽어내는 작업이 최우선적으로 진행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즉, 지역 사회와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서 육지 생활을 하는 육군들과는 달리, 지리적으로나 물리적으로 바다위의 함선 이라는 고립된 장소에서 생활을 하기 때문에, 환경 자체가 스트레스가 될 수 있다는 진단이다. 그리고 해군들을 위한 문화예술교육에 이 점이 중요하게 고려되어야 한다는 지적인 셈이다. 그러나 한국문화예술교육원 기획홍보팀의 김태연대리는 이와는 조금 다른 생각을 들려주었다.  “긴 시간 동안 함정에서 생활해야하는 해군의 경우는, 일반적으로 문화예술교육에 대한 관점 자체가 다릅니다. 그들은 활동적인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보다는 인문학처럼 오히려 정적이고 사고할 수 있는 교육에 관심이 많은 것 같아요. 출렁거리는 바다의 갑판 위에서 연극 연습을 하는 것보다는 서로 생각하고 토론하는 프로그램을 더 원하는 것이겠죠.”

한편 공군의 경우는 사병간의 책무가 철저하게 보직 중심으로 이루어진 조직이라는 점에서 육군이나 해군과는 또 다른 특성을 가진다. 전문화된 특기교육으로 인해 역할의 대체 요원이 충분하지 않다는 점, 6주에 2박 3일 외박 등의 근무환경은 공군만이 가지는 특수한 환경으로, 문화예술교육을 위해 많은 수의 병사들을 같은 시간에 소집한다는 것이 쉽지 않다는 점이 현실적인 문제로 지적되었다. 따라서 공군에서의 문화예술교육은 집단적인 형태보다는 소규모 형태의 것으로 진행될 수밖에 없다는 것으로 의견이 모아졌는데, 그렇다면 이에 대한 지원 역시 육군이나 해군에 대한 지원과는 다른 방식으로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공군의 경우, 병사들에 대해 문화예술교육 활동에 대한 지속적인 홍보 활동을 펼치는 것이 그 어느 부대에서보다 중요한 사안으로 설정되었다. 왜냐하면, 소규모의 활동일수록 병사들의 자발적인 참여 없이는 프로그램의 지속적인 진행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제 시행만을 남긴 군 장병 문화예술교육

현재, 군 장병 문화예술교육 사업의 진행을 위한 기초적인 조사는 모두 마무리 된 상태이다. 그리고 시범 사업이 실시될 부대(육군 4개 부대, 해군과 공군이 각각 3개 부대씩)를 선정하는 작업도 이미 마쳤다. 그리고 8월 중에 드디어 시범 사업이 시작될 예정이다. 그러나 시범 사업의 시행을 코앞에 두고 있는 지금, 군 장병 문화예술교육의 컨텐츠 개발과 관련된 분야의 준비는 아직 미비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기도 하다. 그리고 이와 같은 지적은 컨텐츠와 관련한 분야에서의 준비가 이 사업 전체의 핵심에 해당한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지적이다. 하지만, 시범 사업의 진행을 통해 병사들의 구체적인 욕구를 보다 분명히 파악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반영하면서, 더욱 다양한 컨텐츠를 개발해갈 계획이라는 관계자의 답변은 이와 같은 문제에 대해 약간은 마음을 놓게 하기도 한다.


문화부와 교육진흥원, 문화단체 관계자들이 해군의 함정을 직접 방문하여 현장의 요구사항과 실태에 대한 조사활동을 벌였다.

지난 6월의 부대 방문을 참관한 <시민문화기업 티팟>의 조주연 대표는 앞으로 시행될 군 장병 문화예술교육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이렇게 정리했다. “군 문화예술교육이기 때문에 피 교육대상자들의 특성을 고려하는 것은 기본적인 것이지만, 그렇다고 특별히 다른 관점으로 다가가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더 세심하게 고려해야 할 것은 문화예술교육의 특성인 ‘자율적인 의지와 상상력’이 군 문화와 어떻게 결합할 수 있는가를 세심하게 연구하는 것입니다. 앞으로 진행될 문화예술교육이 색다른 장르적 체험에 그치거나 병사들의 요구에 대한 단편적인 충족으로 끝나버리는 오류를 범한다면, 이는 결코 큰 교육 효과를 얻는 것으로 이어질 수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실수는 군 장병 문화예술교육프로그램을 단계적으로 보다 세밀하게 설계하고 이를 지속적으로 검토하는 과정을 통해서만이 사전에 막을 수 있겠지요. 군 장병 문화예술교육을 통해, 병사 개인의 요구와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것에서부터 개인적인 성장을 가능하게 하는 부분까지를 이뤄낼 수 있기 위해서, 문화예술교육의 자발성 및 창조성을 군 문화에 어떻게 자연스럽게 적용시킬 수 있을 것인가의 문제는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되어야 할 문제일 것입니다”  

충분한 기간에 걸친 기초 조사와 연구 작업을 통해 마련된 사업임에도 불구하고, 군 장병을 대상으로 문화예술교육이 시행된다는 것은 아직은 낯선 감이 없지 않다. 그것은 아마도 그 간 군대라는 조직이 가져 온 오래 된 이미지들 때문일 것이다. 이제 막 시행될 군 장병 문화예술교육이 아직은 견고하기만 한 그 군대의 이미지를 과연 바꿔 놓을 수 있을까? 문화예술교육을 통해 군대의 모습이 달라진다면 그것은 또 어떤 모습일까? 군 장병 문화예술교육이 관련 기대 이상의 효과를 낼 수 있을지, 군대의 새로운 변화를 장병들은 과연 어떻게 받아들일지 그 이후의 이야기가 매우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