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고을 광주를 빛내는 사람들

강선희|기획운영팀|nanaoya@hanmail.net

문화예술도시 광주를 찾아가다

옛말에 말은 키워서 제주도로 보내고 사람은 키워서 서울로 보내라고 했다. 서울에 가면 그만큼 견문도 넓어지고 출세할 기회도 많다는 뜻이다. 이 속담을 충실하게 반영하기라도 하듯이 현재 우리나라 정책의 대부분은 수도권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지방에서 올라온 학생들은 명절 때가 되면 “시골 내려가?”라는 말을 종종 듣는다고 한다. 어느 지역이건 관계없이 서울이 아닌 곳은 ‘시골’로 분류되는 것이다. 지방출신인 필자로서는 자존심 상하는 일이지만 어느 정도는 인정할 수밖에 없는지라 딱히 반문할 여지가 없다. 왜냐하면 서울과 지방의 격차란 것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엄청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마냥 포기하고 한숨만 쉬고 있어야 할까. 그러기에는 지역사회가 가진 잠재력이 너무 아깝다. 다행히도 최근에는 지역에서 이루어지는 문화예술 활동이 점차 화두에 오르고 있고, 만족스러울 정도는 아니더라도 크고 작은 문화행사들이 열리고 있다. 그 중, 문화예술도시로의 비상을 꿈꾸는 도시, 광주에서 열정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문화예술 활동가들을 만나보았다.

광주비엔날레가 한창 열리고 있는 지난 9월 14일, 광주역에는 가을날씨답지 않은 땡볕이 내리쬐고 있었다. 역 앞에서 원거리먼거리장거리를 외치는 택시기사를 무시하고 우리가 향한 곳은 광주북구문화의집. 이곳은 지난 1998년 개관, 2000년부터 본격적으로 주민과 연계한 문화예술교육 관련 활동을 시작했다고 한다. 아르떼에서 왔다고 하니 반가운 얼굴로 맞아주시는 분들은 그곳의 스탭과 인턴들이었는데, 스탭 3명, 인턴 2명이라는 단출한 멤버로 이 문화의집을 꾸려나가고 있다고 한다. 그 때문인지 시종 가족 같은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편안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우리의 생활 그 자체가 문화다

바로 옆방에서 들려오는 한문 읽는 소리에 살짝 문을 열어보니 서른 명 남짓 되는 주부들이 열심히 수업에 임하고 있었다. 낮 시간에는 주로 주부들을 대상으로 한 화목서당, 영어잡지읽기 동아리 등의 활동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시가지가 아닌 주택가 가운데 자리 잡고 있는 만큼 주민들과의 소통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고, 주민의 삶과 일상으로 파고드는 문화를 추구한다.

“아줌마들의 수다를 일상적으로 풀어보면 그 안에도 수많은 문화가 있잖아요. 아줌마가 시어머니를 흉보는 가운데서도 가족사, 사회사, 생활사를 엿볼 수 있고 여성의 억압적 구조가 존재하는 거죠. 우리가 그것을 단지 수다라고 치부하지 않고 문화적으로 풀어보는 것이 바로 일상 속에서 찾아내는 문화적 작업입니다.”

우리의 생활 곳곳에 문화가 숨어있다고 역설하는 전고필 상임위원의 말이다. 사람들을 문화라는 밭으로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운영자의 문화적 마인드가 중요하다고 한다. 서민들과의 문화적 벽을 허물고 사람들을 문화에 길들이는 작업을 통해 삶 속의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는 것이다. 문화예술이 어렵고 고상한 것이라는 상식을 깨면, 주위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소쿠리, 떡시루, 가계부에서조차도 옛사람들의 문화를 찾아낼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그것들은 있는 그대로의 타임머신이 된다. 그 속에서 머리채를 팔아서 떡시루를 산 할머니의 이야기를 읽어내고 가계부 한쪽의 메모에서 그네들의 마음과 갈등을 읽어낸다. 이것이 삶의 문화다. 이렇듯 우리의 삶 속에는 문화가 깊숙이 침투해있다. 이런 발상을 바탕으로 「우리집 살림살이」라는 기획전을 열었다고도 한다.

동네 – 삶을 투영해주는 공간

북구문화예술의집이 다른 문화예술시설과 차별되는 점은 역시 ‘지역’이라는 점이다. 광범위하게 광주라는 추상적 개념의 지역이 아니라 생활권, 동네라는 개념에서 삶의 유형들을 투영해줄 수 있는 공간이다. 다만 인적 물적 자원이 풍부하지 못한 탓에 운영상의 어려운 점이 많기는 하지만 운영자들의 남다른 애정이 이 문화의집을 이끌어가는 원동력이 되고 있는 듯 하다. 문화 코디네이터 정민룡 씨는 문화행사 기획부터 문화의집 홈페이지 제작(http://www.munhwahouse.or.kr/), 심지어는 프린터 수리까지 하는 일인다역의 만능꾼이다. 그렇지만 힘들고 고되다기보다는 즐겁고 재밌어 죽겠다는 듯한 말투와 표정에서 이 일에 대한 자긍심이 엿보이기도 했다. 사람들의 삶을 내보여주는 전시작업이 가장 재밌다고 말하는 그는, 자원활동에 있어서도 전문성을 가지고 임해야 한다면서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사람들의 임무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지적한다.

현재 진행하는 있는 「골목이야기 프로젝트」는 일련의 교육프로그램을 이용해 ‘골목’이라는 가장 친근한 소재 속에서 이야기를 이끌어내는 주민참여 프로젝트다.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이 하는 거라서 전문적인 수준은 아니지만 우리들 어른이 미처 발견하지 못하는 것들을 아이들은 발견하거든요. 더 세심하게 관찰하고 사소하게 지나칠 수 있는 것들도 왜 그런지 꼭 의문을 가지는 게 굉장히 재밌어요.”

「골목지리 탐험대」를 담당하고 있는 정세연 씨는 아이들이 그린 작품들을 하나하나 늘어놓으면서 아이들의 상상력과 풍부한 감수성에 연신 감탄한다. 그림과 지도를 짚어가는 그녀의 손길 하나에서도 아이들에 대한 애정과 이 일에 대한 애착이 느껴졌다. 이 프로젝트는 9월까지 진행한 후 10월에는 자료집 형태의 책으로 출간할 예정이라고 한다. 자칫 멀게만 느껴지는 문화예술을 가까운 삶 속으로 끌어들이려는 노력은, 문화의 폭을 넓히고 다양성을 인정하는 데 있어서도 중요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람’으로부터 출발하는 예술교육

문화의집을 나와서 우리가 향한 곳은 광주비엔날레 현장이었다. 그곳에서 만난 사람은 비엔날레 교육정보축제팀에서 활동하고 있는 천윤희 씨. 대학원에서 학부 전공과는 다른 예술경영을 전공하면서 자기가 갈 길을 찾았다고 눈을 빛내면서 말하는 그녀는, 비엔날레가 너무 좋아서 서울에서 광주까지 내려왔다고 한다. 일곡도서관에서 진행했던, 엄마와 아이가 미술로 이야기하는 프로그램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듣고 있는 쪽도 흥분할 정도로 특별한 애정을 표시했다. 각 지방의 선생님들을 어렵게 한 곳에 모으고 몇 번이나 사전교육을 하고 사비를 털어서까지 진행했던 그 프로그램은 힘들었던 만큼 잊을 수 없는 감동을 안겨주었다고 한다.

교육이라는 것은 프로그램 자체도 중요하겠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것을 진행하는 사람이라고 한다. 누가 진행하느냐에 따라서 똑같은 프로그램도 달라지는 법이라고, ‘매뉴얼’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람’이라고, 조용하지만 또박또박한 목소리로 그녀는 얘기했다. 그리고 그녀의 말투 하나, 몸짓 하나에서 뿜어져 나오는 뜨거운 열정은 그런 주장을 충분히 뒷받침해주고 있었다. 좋아하는 일을 열심히 하고 있는 이에게서 느껴지는 충만감과 파워란 정말 대단하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느끼게 해 준 사람이었다.

이런 사람들이 있기에 아직 지역문화의 미래는 밝다고 감히 얘기할 수 있을까. 아직은 갈 길이 멀지만 이러한 작은 움직임들이 언젠가는 문화예술의 흐름을 통째로 바꿔놓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서울로 올라오는 KTX안, 이번 광주행에서 얻은 것들을 곱씹어보면서 그들의 열정에 감탄이랄지 부러움이랄지 모를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강선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