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루촌은 경기도 파주시 진동면 동파리 일대의 마을 이름입니다. 서울에서 서북쪽으로 약 백여리 떨어져 있고, 임진강과 판문점, DMZ가 가까운 민간인 통제 구역이지요. 이곳에 지난 5월 10일, 꿈다락 토요문화학교 주말문화여행 프로그램 ‘놀이설계자의 골목여행’ 이 열렸습니다. ‘놀이설계자의 골목여행’ 프로그램은 자연 속에서 마음껏 뛰어 놀고, 새로운 것을 만들고, 관찰하여 몸으로 알아가는 체험학교 ‘고무신 학교’와 함께하였는데요, 이날은 4주간의 프로그램 중 3번째 시간이었습니다. 부모님과 아이들이 함께 어울리는 그 특별한 시간에 소설가 황현진이 동행했습니다.

 

해마루촌으로 들어가는 일은 쉽지 않았다. 행정구역상 파주에 속하긴 했지만 해마루촌은 DMZ와 그리 멀지 않은 민통선 지역이다. 미리 사전 허가를 받아야만 마을로 들어갈 수 있고, 입구의 검문소에 신분증을 맡겨야만 통과가 가능했다. 딱딱한 표정으로 방문객의 신분증을 검사하는 군인들에게 단답형의 대답을 하는 동안 내가 지금 굉장히 낯선 곳을 찾아왔다는 기분에 슬쩍 긴장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 이런 생각도 들었다. 우와, 값비싼 비행기 티켓 값을 지불하지 않아도 이토록 신기하고 생경한 장소로 여행을 할 수도 있는 거구나! 아니나 다를까, 검문소를 지나자마자 네비게이션의 지도는 먹통이었다. 어떤 길도 표시되지 않았다. 지도상에는 전혀 나타나지 않는 은밀하고 비밀스러운 길을 나는 그저 단순히 놀기 위해서 질주하고 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제대로 놀아본 기억이 없다. 그 말인즉슨 제대로 할 줄 아는 놀이가 없었다는 뜻이다. 기껏해야 고무줄놀이나 공기놀이를 하며 방과 후의 긴 시간을 때웠다. 딱지치기나 비석치기는 남자아이들의 놀이였다. 놀이터에서 그네를 타는 일은 잦았지만 시소를 타거나 정글짐을 오르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시소를 타려면 짝이 필요했고, 정글짐을 오르려면 용기가 필요했다. 결과적으로 나는 잘 놀지 못하는 어린이였다.

어른이 된 지금, 나는 너무나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어린애들과 잘 놀지 못하는 어른이 되고 말았다. 명절에 우르르 몰려드는 어린 조카들을 거실에 한데 모아놓고 고작 텔레비전이나 켜주는 어른이 바로 나였다. 그 때마다 왠지 모를 죄책감이 들었다. 잘 놀아주지 못해서, 더불어 조카들마저 나와 같이 잘 놀지 못하는 어른이 되도록 내버려두고 있는 것 같아서 불안하고 미안했다. 해마루촌에 다녀와서 드는 생각은 이렇다. 노는 게 뭐 그리 대수라고! 세상에 놀 거리가 얼마나 많은데!

 

고무신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잘 부러지지 않는 분필을 나눠주었다. 해마루촌의 모든 길과 벽, 심지어 바위마저도 스케치북이었다. 비석치기를 위한 경계선을 그리는 일도, 사방치기를 위한 네모꼴의 놀이판을 그리는 일도 모두 아이들의 몫이었다. 아이들은 사방치기의 맨 꼭대기에 하늘을 그려 넣으며 소리 내어 웃었다. 그러다 환하게 웃는 자신을 닮은 얼굴을 그렸다. 또 다른 아이가 깨금발을 하며 돌을 집는 동안 다른 아이는 보도에 깔린 돌 위에 꽃을 그렸고 또 다른 아이는 때마침 날아오는 나비와 잠자리를 쫓아갔다. 그 주위를 둘러싸고 아이들을 응원하고 박수를 치며 때때로 멋대로 날아가는 돌의 방향을 보며 누구보다 크게 한숨을 내쉬는 이들은 아이들과 함께 놀이에 참여한 부모님들이었다. 비석치기를 하면서 누구보다 빨리 자기 차례가 돌아오기를 안절부절못하며 기다리는 이들 역시 어른들이었다. 사방치기의 놀이판 안에서 어른과 아이, 부모와 자식의 구분은 사라지고 없었다. 이유는 분명했다. 참가한 어른들의 대부분은 한때 비석치기의 전문가였다. 사방치기의 일인자였다. 오래 전에 묻힌 기억과 감각은 단박에 되살아났다. 알고 보면 우리는 노는 데 일가견이 있는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좀 놀아본 어른들이었던 것이다.

 

제기차기를 하려면 제기를 만들어야 했다. 팽이를 돌리려면 팽이를 만들어야 했다. 딱지치기를 하려면 딱지를 접어야 했다. 심지어 그네도 직접 만들어야 탈 수 있었다. 주위에 흩어져 있는 것들을 모으는 것, 길가의 돌멩이를 줍고 튼튼한 나뭇가지를 골라내고, 빈 병에 물을 채우는 것, 무언가를 만들어내고 즉석에서 만들어낸 무엇으로 어떤 놀이를 하기까지, 그 모든 과정이 놀이에 속했다.
아버지는 아들보다 제기차기를 못했다. 어머니는 딸보다 가위바위보를 못했다. 아버지는 아들보다 승부욕이 강했다. 어머니는 딸에 비해 아는 노래가 많이 없었다. 딸에겐 가위바위보를 할 때마다 보자기만 내는 버릇이 있었다. 아들은 정작 구슬치기엔 관심 없고 햇볕에 구슬을 비춰보는 데 정신이 팔려 있었다. 저절로 칭찬이 후해지는 날이었다. 글씨를 예쁘게 쓸 필요도 없고, 그림을 잘 그릴 필요도 없고, 친구를 반드시 이겨야만 하는 경쟁적 구도의 놀이 또한 전혀 없었다.

어느 어머니가 신기하다는 듯 말했다. “우리 애가 낯가림도 안 하고, 어쩜 저렇게 잘 놀까요.” 오후 즈음, 그 어머니야말로 가장 열심히 놀고 있는 어른 중 한 명이었다. 어머니, 우린 어쩜 이렇게 잘 놀까요. 괜스레 어깨를 툭 치며 농담을 걸고 싶은 순간이었다.

 

고무신 선생님의 말을 빌리자면 이러하다. 놀이는 기억의 통로라는 것이다. 부모의 기억과 아이의 기억이 놀이의 경험을 통해서 시대를 초월하는 공통의 감각을 공유하는 것. 기억 속에 유전자처럼 각인되어 있는 놀이의 기억을 아이와 더불어 살려내는 일. 고무신 선생님은 바로 그 일에 골몰하는 사람이다. 부모와 아이가 서로의 가장 가까운 친구가 되어주게끔 이끌어주는 사람. 그의 말마따나 우리의 몸은 한 때 좀 놀았던 감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우리는 이미 웬만한 놀이에는 충분히 능한 사람들이다. 상상해보라. 먼 훗날, 장성한 아들•딸과 문득 이런 내용의 담소를 나누는 순간을.

 

“그날 네가 내 딱지 다 가져갔잖아.”

“아버지가 가위바위보 할 때 늦게 내셨잖아요.”

“이제 와서 말인데, 나 일부러 제기 못 차는 척 한 거야.”

“말이 나와서 하는 말인데요, 사방치기 할 때 툭하면 금 밟으시던데, 제가 일부러 못 본 척 한 거예요.”

“심심한데 구슬치기나 한 판 할까?”

“그럼 일단 가위바위보부터 할까요?”


황현진 작가



글•취재_황현진

소설가. 2011년 문학동네작가상 수상.

장편소설 <죽을 만큼 아프진 않아> 가 있다.


꿈다락 토요문화학교는 2012년 3월부터 전면 실시된 전국 초⋅중⋅고등학교 ‘주5일 수업제’를 맞이하여 전국 16개 시⋅도 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 지역문화예술기관, 국공립기관, 도서관, 극단 및 소극장, 해외기관 등과 함께 참여하는 학교 밖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이다. 아동 청소년을 포함하여 온 가족이 문화예술로 소통하는 새로운 주말 여가 문화를 만들어가고자 양질의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특히 주말문화여행 프로그램은 가족 모두가 주말에 함께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여행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서로 소통하고 새로운 것에 흥미를 느끼며 한층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는 것에 목적을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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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글에서 다룬 ‘놀이설계자의 골목 여행’ 프로그램 외에도 길 위에서 음악과의 추억을 만드는 ‘소소한 버스킹 투어’, 자전거로 여행하는 ‘두 바퀴의 세상여행’, 스스로 여행을 기획하고 떠나보는 ‘여행디자이너의 또 다른 여행!’ 등 4개의 프로그램으로 꽉 찬 토요일을 준비하고 있다. 6월 21일부터는 수도권을 비롯해 충청, 경상, 호남, 강원, 제주 등 전국 6개 권역에서 주말문화여행 프로그램이 본격적으로 펼쳐진다.

 

꿈다락 토요문화학교 http://toyo.arte.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