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동명초등학교는 매주 목요일마다 전교생을 대상으로 디지털 뮤지컬 교육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열심히 땀 흘리는 아이들과 그 곁의 고석우 코디네이터를 소설가 한은형이 만났습니다. 꿈의 땅을 일구고 희망의 씨앗을 심는 희망 메시지를 여러분께 전합니다.

 

작사 작곡 미상

 

봄이었다.

추웠다. 봄은 늘 그랬다. 햇살은 인색하고, 바람은 퉁명스러웠다.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이었을 것이다. 볕이 있었다. 어느 집의 시멘트 담벼락. 잘 사는 집이었다. 나는 담벼락에 몸을 기댔다. 등이 따뜻했다. 발가락이 간질간질해졌다. 쭈그려 앉은 채로 잠이 들었다.

그러다 잠에서 깼다. 피아노 소리였다! 들은 적은 없었지만 알 수 있었다.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에는 피아노가 없었다. 풍금만 있었다. 그때까지 나는 피아노라는 게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피아노 소리는 듣지 못했던 것이다.

그 집에 요정 같은 아이가 살 거라고 생각했다. 그 후로도 그 집을 지나다니며 피아노 소리가 들려오기를 바랐다. 창문을 열고 그 요정 같은 아이가 나타나주길 기대했다. 내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어떤 노래인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피아노를 배운 지 얼마 안 된 아이의 서툰 연주였을 수도 있다. 하지만 잊을 수 없다. 그 소리가 내 마음을 만졌다는 것.

 

<남 몰래 흘리는 눈물>

 

내 뒤에서는 늘 그 노래가 들렸다.

〈남 몰래 흘리는 눈물〉. 도니체티의 오페라 〈사랑의 묘약〉에 나오는 아리아.

사람들은 이 노래를 오해한다. 슬퍼서 흘리는 눈물이라고, 〈남 몰래 흘리는 눈물〉의 ‘눈물’은 기쁨의 눈물이다. 아디나의 눈에 고인 눈물을 본 네모리노가 기뻐 부르는 노래다. 아디나가 드디어 네모리노를 사랑하게 된 순간이기 때문에.

나는 알면서도 이 노래를 곡해했다. 이 노래를 부르면 눈물이 났다. 내게 음악을 한다는 것은 기쁨만은 아니었기 때문에.

레슨 받을 돈을 마련하느라 부모님은 힘들어 하셨다.

풍족하지 않은 환경에서 음악을 한다는 이유로 손가락질 받았다.

결혼 축의금을 들고 아내와 함께 이탈리아로 도망쳤다.

다시 돌아온 한국, 성악가로 무대에 선다. 행복하다.

어느 날,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다시 러시아로 간다. 지휘자 수업을 받기 위해서.

다시 돌아온 한국, 이제 성악가가 아닌 지휘자로 무대에 선다.

이제는 안다. 〈남 몰래 흘리는 눈물〉을 들으며 흘렸던 내 눈물에는 슬픔만 있던 게 아님을.

 

<대청호의 비밀과 미래>

 

오늘은 목요일, 하루 종일 아이들과 뮤지컬 연습을 하는 날.

일학년부터 육학년까지, 팔십 명이 채 안 되는 전교생이 함께.

이 년 동안 아이들은 뮤지컬의 대사를 쓰고, 곡을 만들고, 노래와 연기를 배우고, 무대의 소품들을 만들었다.

나는 밖에서는 오페라를 지휘하지만, 여기서는 아이들의 코디네이터다. 이제 나는 나를 연주하지 않는다. 자신을 연주하는 아이들을 연주한다.



활기가 넘치고 웃음이 끊이질 않는다.

처음에는 그러지 못했다.

“뮤지컬 하기 싫은데요.”

“뮤지컬이 싫은 게 아니라 연기가 싫은 거야.”

맞았다. 그 아이는 연기 대신 영상을 편집하고 음향을 만진다. 나는 그를 ‘감독님’이라 부른다. 아이는 뮤지컬의 영상감독이니까. 컴퓨터 게임을 좋아하던 아이였다. 아이는 이제 안다. 컴퓨터로 할 수 있는 게 게임 말고도 있다는 것을.

아이들은 안다. 무대 바깥도 무대임을. 뮤지컬을 연기하는 배우들만 연기하는 게 아님을.
우리 모두 제 자신을 연기하고 있음을.



곧 아이들의 뮤지컬이 무대에 오를 것이다. <대청호의 비밀과 미래>.

아이들은 멧돼지거나 인간, 여우, 사슴이 될 것이다. 자신들이 만든 소품을 들고, 자신들의 손으로 분장을 하고, 연기하고, 연출할 것이다.

대청호와 함께 자란 아이들이다. 뮤지컬에는 대청호의 맑은 물이 세계로 나가는 장면이 나온다. 이 아이들은 어디로 가게 될까. 자신들이 빛났던 이 순간들을 기억한다면 좋겠다. 그 ‘빛’으로 누군가를 밝힌다면 좋겠다. 세상 밖으로 흘러나간 대청호의 물이 세상을 변화시킨다는 이 뮤지컬처럼.



다시 봄이다. 백 개가 넘는 눈동자가 반짝거리고 있다.


한은형 작가




취재•글_ 한은형

소설가. 2012년 문학동네신인상을 수상하며 등단


대전 동명초등학교는 대전 동구 추동에 위치한 전교생 85명 남짓의 작은 학교이다. 2011년 예술꽃씨앗학교로 선정되어 올해로 4년째 전교생을 대상으로 하는 문화예술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다. 특별히 이 학교에서는 매주 목요일 ‘목요예술꽃씨앗학교’ 수업을 진행한다. 영상, 미술, 무용, 노래, 연기 등 총 5개 분야 중에서 어린이들은 학년별로 원하는 수업을 선택하여 들을 수 있다. 이 중 1~6학년의 모든 어린이가 함께하는 뮤지컬 연기 수업은, 문화예술과 디지털 콘텐츠의 동시체험을 통해 문화적 격차를 줄이고, 배려와 나눔으로 인성교육을 이뤄가는 데에 그 목적이 있다.

이번 글에서도 다룬 뮤지컬 수업에서는 대청호의 무분별한 개발과 보존에 관한 내용의 ‘대청호의 비밀과 미래’, 강아지똥 창작 동화를 각색한 국악풍 뮤지컬 ‘강아지똥’ 등 다양한 뮤지컬 작품을 공연 위주 프로그램으로 진행한다. 특히 뮤지컬에 필요한 무대 그림이나 소품, 의상들은 예술꽃 수업 시간에서 어린이들이 직접 제작하고 있다. 글 속 화자이기도 한 고석우 코디네이터는 지휘자이자 성악가로서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으며, 현재 동명초등학교 예술꽃씨앗학교 수업을 통해 아이들이 예술 속에서 성장해 가는 순간을 함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