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우리나라에서도 뮤지컬에 대한 인기가 높아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데요. 혹시 브로드웨이 최초의 뮤지컬은 무엇인지 아시나요? 바로 1927년 초연된 <쇼 보트>라고 합니다. 미국 브로드웨이 사상 일관된 스토리와 대본, 음악을 갖춰 “최초의 뮤지컬” 이라고 평가받는 이 작품, 오늘은 최유준 음악평론가에게서 <쇼 보트>의 내용과 의미에 대해 들어보는 시간을 가집니다.

 

한국에서 뮤지컬의 대중적 인기는 적지 않지만, 뮤지컬을 진지한 예술 텍스트로 바라보는 시각은 부족해 보인다. 제도화된 고급예술계에서는 뮤지컬을 알맹이 없는 미국식 오락문화로 무시하기 일쑤이며, 반대로 대중예술계에서는 비싼 티켓 값에 화려한 무대가 있는 고급문화의 변종으로 치부하곤 한다. 뮤지컬이 과연 사치스러운 오락상품이기만 할까?

 

미국 브로드웨이 사상 완성된 대본과 음악을 갖춘 현대적 의미의 북 뮤지컬로서 “최초의 뮤지컬”로 간주되는 <쇼 보트>(1927년 초연)를 보면 생각이 조금 달라질 것이다. 이 작품은 미국에서 인종간의 화해를 다룬 최초의 음악극이며, 1936년에 이 작품을 영화화한 뮤지컬 영화 <쇼 보트>는 인종간의 화해를 다룬 최초의 영화로 평가되기도 한다.

 

 

뮤지컬 <쇼 보트>는 19세기말 미시시피 강을 따라 흘러가다가 강유역의 여러 도시에 정박해 환상의 무대를 선보이는 유랑 연예선(쇼 보트)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 연예선의 프리마돈나인 줄리는 선장의 딸 매그놀리아와 친자매처럼 끈끈한 사이다. 하지만, 줄리를 짝사랑하여 치근덕거리다가 그녀의 남편 스티브에게 모욕을 당한 어느 선원의 보복성 밀고로 줄리와 스티브는 배를 떠나게 된다. 백인인 줄 알았던 줄리가 사실은 흑인(혼혈)이라는 비밀이 밝혀지게 되는데, 당시에 미국 대부분의 주에서 흑인과 백인 사이의 혼합결혼이 법으로 금지되었기 때문에 줄리와 스티브는 추방당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갈등이 생기기 전 행복한 풍경이 펼쳐지는 다음의 뮤지컬 속 장면을 동영상으로 감상해 보자. 도박사 래브날과의 우연한 만남에서 난생 처음 사랑의 감정을 느낀 매그놀리아가 줄리에게 조언을 구하는 장면이다. 매그놀리아가 묻는다. “언니는 스티브를 왜 사랑해요?” 으레 그렇듯 이런 질문에는 노래로 답할 수밖에 없다. “물고기가 바다를 헤엄치고, 새가 하늘을 날 듯, 나도 죽을 때까지 한 사람을 사랑하지. 그냥 그럴 수밖에.”

 

Video“Can’t Help Lovin’ Dat Man”, 1994년 브로드웨이 리바이벌 팀의 텔레비전 방송 실황

 

블루스 양식으로 불러지는 이 노래는 극중에서 흑인들 사이에 전승되던 민요로 설정된다. 그래서 줄리의 노래를 듣던 흑인 요리사 퀴니는 백인인 줄리가 이 노래를 아는 것이 신기하다. “이 노래를 어떻게 아느냐?”고 따지는 퀴니의 물음에 찔끔해 하면서도 줄리가 노래를 마저 부르고나면, 때마침 들어선 퀴니의 남편 조가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노래”라면서 즉흥 가사를 담아 퀴니와 함께 노래한다.

 

이어서 흑인과 백인을 가릴 것 없이 등장인물 전체가 함께 춤을 추면서 노래를 부르는데, 여기서 인종문제를 다루는 이 작품의, 20세기 초라는 이 작품의 초연 시점을 고려했을 때 놀라울 만큼의 진보적 태도를 읽을 수 있다. 이 장면은 20세기 후반 로큰롤 열풍과 함께 음악적으로 실현된 미국의 흑백 인종간 화해의 순간을 30여년이나 앞서 보여준다고도 하겠다.

 

물론 초기 작품으로서의 한계도 있다. 작품 안에서 줄리나 조와 같은 흑인 등장인물들은 부조리한 현실에 저항하지 못한 채 순응하고 체념하며, 매번 백인 주인공들의 행복을 위해 희생될 뿐이다. 예컨대 뮤지컬의 주제곡에 해당하는 <늙은 강(Ol' Man River)>은 배를 떠나는 줄리의 모습을 보면서 흑인 조가 스스로 아픈 마음을 달래며 체념어린 가사로 부르는 노래다. 하지만, 인권운동가이기도 했던 흑인 바리톤-베이스 가수 폴 롭슨1)은 자신의 독창 무대에서 <늙은 강>의 수동적 가사를 능동적 가사로 바꿔 부름으로써 흑인들의 저항 정신을 불러일으키곤 했다.

 

VideoPaul Robeson, “Ol’ Man River

 

*1960년대 흑인 민권운동 현장에서 부르는 것으로 추정되는 이 동영상 속 연주에서 폴 롭슨은 “미시시피라고 불리는 늙은이가 있지. 나는 그를 닮고 싶네.”라는 원래의 첫 줄 가사를 “~ 나는 그를 닮고 싶지 않네.”로 바꿔 부르며, “나는 지쳤어, 사는 것도 지쳤지만 죽는 것도 두려워.”라는 마지막 절정부 가사를 (1분 30초 지점에서부터) “나는 울지 않고 웃을 거야, 나는 죽을 때까지 싸워야 해.”라는 투쟁적 가사로 바꿔 부르고 있다.

 

<쇼 보트>는 이렇듯 여러 맥락에서 지난 한 세기 동안 미국사회의 인종정치에 영향을 미친 영감어린 텍스트였다. 뮤지컬을 진지한 예술적 텍스트로 간주하는 데에 인색한 한국의 문화예술계에서, 그리고 어느덧 미국과 같은 다인종·다문화 사회로 접어든 한국의 현실에서 되새겨보아야 할 뮤지컬 작품이다.

 


1)전설적 흑인 가수이자 인권운동가 폴 롭슨(Paul Robeson)은 <쇼 보트> 초연에서는 개인 일정이 맞지 않아 조 역할을 맡지 못했지만, 초연 직후부터 줄곧 조 역할을 담당했고 1936년 <쇼 보트>가 영화화되었을 때도 조 역할을 맡았다. 그의 드라마틱한 일생이 미국에서 조만간 영화화된다는 소식이 들린다.

 


아르떼365 최유준 음악평론가





글쓴이_ 최유준 (음악평론가)

서울대와 동아대에서 음악미학과 음악학, 문화연구를 전공했다. <월간 객석> 등의 지면을 통해 음악평론가로 활동해 왔으며, 현재 전남대학교 감성인문학사업단에서 HK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다. 음악과 대중문화를 주된 텍스트로 삼아 사유의 경계를 넘나드는 다양한 비평적 노력을 해왔다. 저서로 『음악문화와 감성정치』, 『예술음악과 대중음악, 그 허구적 이분법을 넘어서』 등이 있으며, 번역서로 『지식인의 표상』, 『비서구 세계의 대중음악』, 『아도르노의 음악미학』, 『뮤지킹 음악하기』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