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차르트와 살리에리, 영화 <아마데우스>에서 등장하는 두 사람의 이야기는 선천적 천재와 노력형 천재라는 이름하에 수없이 비교되어왔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선천적 천재로서의 모차르트를 기억하게 되었는데요. 하지만 영화 속과 영화 밖에서 언급되는 모차르트의 천재성에 대해 의문을 가져본 적이 있나요? 사회학자 노베르트 엘리아스는 모차르트의 천재성을 새롭게 평가하는데요. 오늘은 최유준 음악평론가와 함께 사회학적인 새로운 시각으로 모차르트의 천재성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집니다.

 

영화 <아마데우스>(1984)는 모차르트의 천재적 음악성을 시기한 빈의 궁정 악장 살리에리가 모차르트의 독살을 교사했다고 하는 확인되지 않은 소문을 소재로 하고 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말년의 살리에리가 휠체어에 몸을 실은 채 정신병원 복도를 지나오면서 양 옆의 인간 군상에게 자조적으로 외치는 대사는 관객들로 하여금 (환청으로 들리는 모차르트의 웃음소리와 함께) 섬뜩한 느낌까지 들게 만든다. “세상의 모든 평범한 인간들이여, 내가 너희의 죄를 사하노라. 내가 너희 모두의 죄를 사하노라.”

 

 

하지만, ‘평범함의 죄’를 지은 우리가 영화 속 살리에리의 그로테스크한 대속에 공감을 보이기에 앞서 던져야 할 중요한 물음이 있다. 모차르트의 천재성이란 과연 무엇일까? 그것은 정말이지 신에 의해 주어진 것일까? 사회학자 노베르트 엘리아스라면 다르게 말할 것이다. 그는 자신의 유작인 『모차르트』에서 ‘모차르트는 (선천적 천재가 아니라) 사회적으로 만들어진 천재’라는 사회학자다운 결론을 내린다.

 

모차르트에게 비범한 집중력과 예민한 듣기 능력이 선천적으로 주어져 있었다는 점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한 능력의 소유 여부와 그 능력이 실제로 뛰어난 예술적 창조로 발현되는가의 여부는 전혀 별개의 문제라는 것이다. 엘리아스는 모차르트의 짧은 일생을 통해 천재적 음악가가 발생하기 위한 사회적 조건을 추출해낸다.

 

우선 모차르트가 당시 꽤나 널리 알려진 바이올린 교재의 저자이기도 했던 아버지 레오폴트 모차르트에게서 체계적인 음악 교육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그런 아버지와 함께 어린 시절부터 유럽 각국을 돌아다니며 당대 최고의 음악가들을 만나 교류하고 그들의 음악을 직접 들어볼 수 있었다는 사실을 고려해야 하겠다. 하지만, 엘리아스가 지적하는 천재성의 사회적 발현 조건이 이렇듯 일종의 조기 교육이나 영재 교육을 의미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엘리아스의 주장은 모차르트가 1781년에 아버지를 비롯한 주위의 거센 반대를 무릅쓰고 고향 잘츠부르크를 떠나 빈으로 갔던, 그 비범한 결단력과 관련되어 있다. 1791년 이른 나이로 요절할 때까지 빈에서의 10년 동안 모차르트는 <후궁탈출>, <피가로의 결혼>, <돈조반니>, <마술피리> 등의 주요 오페라는 물론 교향곡 40번, 41번이나 피아노협주곡 20번, 21번과 같은 자신의 걸작들을 그야말로 쏟아냈다.

 

그 10년 사이의 기간에 1789년의 프랑스 시민 혁명이 있었다. 모차르트는 근대 유럽사회 최고의 격변기에 창작혼을 불태웠던 셈인데, 음악가와 예술가가 속한 중산층 시민 계급이 확고한 정치적 권력을 잡기 전에 그는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났다. 역사의 아이러니이기도 하지만 위대한 창조력은 이러한 과도기적 상황에서 발휘된다. 엘리아스가 말하듯 그것은 언제나 “몰락하는 구 계급의 규범과 부상하는 신흥 계급의 규범 사이에 전개되는 역동적인 갈등으로부터 자라나는 것이다”.

 

 

영화 <아마데우스> 또한 모차르트의 마지막 10년에 주목하여, 그가 잘츠부르크를 떠나는 1781년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영화 초반 자신의 충실한 ‘하인’이기를 요구하는 잘츠부르크 대주교를 향해 엉덩이 인사로 욕보이는 모차르트의 모습은 개연성 있는 사실의 재현이라기보다는 ‘자유예술가’를 향한 모차르트의 실존적 결단을 나타내는 은유적 묘사로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는 귀족의 후원 시스템을 거부하고 자유를 찾아 빈의 음악시장으로 향했지만, 당시의 여러 정황상 그것은 무모한 시도였다.

 

모차르트는 물론 비범한 재능을 가진 음악가였다. 하지만, 엘리아스에 따르면, 그의 그러한 재능이 어떻게 작품 속에서 펼쳐졌는가 하는 것은 “궁정음악가인 그가 ‘자유예술가’로의 걸음을 너무 일찍, 말하자면 사회 발전이 이를 가능케는 했지만 아직 제도적 준비가 덜 된 시점에서 서둘러 내디뎠다는 사실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제 살리에리의 광기어린 시선을 거두고 엘리아스의 합리적 시선으로 영화 <아마데우스>를 다시 본다면, 모차르트의 천재성과 비범함은 다른 모습으로 드러날 것이다. 그것은 청중과 직접 소통하는 ‘자유예술가’가 되기 위해 낡은 관습과 제도의 틀을 거부하는 용기와 결단력이다. 물론 작곡가 개인의 용기와 결단력만으로 ‘자유예술가’의 사회적 조건이 충족되는 것은 아니다. 이미 비장한 결심으로 탈제도의 모험을 감행하고 있거나 준비하고 있는 한국의 젊은 작곡가들에게는 잔인한 얘기가 될지도 모르지만, 비범한 용기를 가진 선구적 실패자들이 후대의 성공에 대한 발판이 되어줄 것이다. 베토벤이 자유예술가로서 성공을 거두기 전에 모차르트의 실패가 있었듯이 말이다.

 


아르떼365 최유준 음악평론가

글쓴이_ 최유준 (음악평론가)

서울대와 동아대에서 음악미학과 음악학, 문화연구를 전공했다. <월간 객석> 등의 지면을 통해 음악평론가로 활동해 왔으며, 현재 전남대학교 감성인문학사업단에서 HK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다. 음악과 대중문화를 주된 텍스트로 삼아 사유의 경계를 넘나드는 다양한 비평적 노력을 해왔다. 저서로 『음악문화와 감성정치』, 『예술음악과 대중음악, 그 허구적 이분법을 넘어서』 등이 있으며, 번역서로 『지식인의 표상』, 『비서구 세계의 대중음악』, 『아도르노의 음악미학』, 『뮤지킹 음악하기』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