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고 지친 일상 속 현대인들에게 필요한 건 따뜻한 위로가 아닐까요? 때로는 영감을 주고 때로는 미소 짓게 하며 사람과 사람, 자연과 자연을 평화로운 방법으로 전달하는 디자인이 우리를 위로 해줄 수 있다고 하는데요. 틀에 박힌 삶 속에서 즐거운 일탈을 경험하게 해주는 ‘위로의 디자인’ 을 만나볼까요?

 

지난 5개월간의 연구 프로젝트는 지독히도 무더웠던 올해 여름만큼이나 힘들었다. 23명의 심층인터뷰, 138명의 설문조사, 방대한 자료조사를 기반으로 했으며, 최종 인쇄본까지 편집해서 제출해야 했기에 마지막 인쇄본을 손에 받아드는 순간까지 긴장을 늦출 수가 없었다. 모든 일정이 마무리된 그런 순간에 읽게 된 책이 『위로의 디자인』이다. 여름휴가도 생략한 채 딱딱한 학술용어와 보고서 문체에 시달리던 나에게 위로의 메시지가 물밀 듯 밀려오는 감동의 순간. “야! 정말 세상에 이렇게 즐겁고 재미있는 일을 하고 사는 사람들도 있구나!” 하고 무릎을 딱 칠 수밖에 없었다.

 

모순투성이의 세상이 적반하장으로 모든 인간에게 도덕적, 이성적, 합리적 잣대를 들이대는 현실. 모든 것을 개인의 잘잘못으로 따지고, 개인의 노력부족으로 귀결시키는 숨막히는 세상. 이런 세상에 대해 어떤 이들을 냉철한 사상과 이론으로, 어떤 이들은 격렬한 저항과 구호로 이의를 제기하기도 하는데, 이 디자이너들은 너무나 창조적 아이디어와 평화로운 전달방식으로 메시지를 전달한다.

 

 

이 책의 저자인 유인경과 박선주는 디자인 잡지 기자로 일했던 공통된 경험을 바탕으로 독자들의 마음을 힐링해 줄 수 있는 세계 각지의 독특한 디자인을 소개하고 있다. 세상의 디자인에 대한 일반적인 잣대가 성과 중심적, 생산성과 효율성에 관한 것이라면, 이 책에 소개되는 디자인들은 틀에 박힌 세상을 살아가는 독자들에게 즐거운 일탈을 경험하게 해준다. 문장이 깔끔해서 어려움이 없이 술술 읽혀나가고, 기발한 디자인을 소개하는 사진들이 눈 호강을 시켜주는 까닭에 “휴가지에서 읽으면 좋은 책”으로 소개하고 싶은 마음이다. (개인적으로는 생략했던 여름휴가를 이 책 한권으로 보상받았다.)

 

1장 「비를, 지금 당신에게」에서는 바람에 나부끼는 종이를 표현한 조각작품 “브라스크”, 연처럼 날아오르는 거대한 “리틀 샤이닝 맨”, 밤이 되면 별처럼 떠오르고 동이 트면 천천히 지는 “슬리퍼스 어웨이크”, 은은한 달빛을 뿜어내는 야광보름달을 쿠션으로 만들어낸 “오버 더 문”, 빗소리를 작품화한 “사운드 룩킹 레인” 등을 소개하고 있는데, 자연 속에서 친숙한 소재를 활용하여 누구나 가져볼만한 꿈이 현실이 되는 기쁨을 맛보게 한다.

 

2장 「낭만적 농담」에서는 책이 된 이불 “베드타임 스토리즈”, 획일적인 텐트에서 벗어나 예술적 감성이 곁들여진 익살스러운 텐트 “블루캔디”, 백신기능을 강조하여 유쾌한 링거 형태로 만들어진 외장 하드 드라이브 “닥터 하드 드라이브 백” 등 낭만적 농담이라는 제목만큼이나 유쾌한 작품들이 소개된다.

 


 

3장 「함께라는 행복」에서는 시민들의 참여를 이끌어내는 디자인 작품들을 소개하고 있는데, 야외에 커다란 칠판을 마련하고 죽기 전에 하고 싶은 일을 시민들에게 적게 하는 “비포 아이 다이(Before I die)”와 함께 회색빛 도시 미국 뉴욕 맨해튼에 화사한 꽃무늬를 수놓은 ‘가든 인 트랜싯’ 프로젝트가 흥미롭다. 뉴욕의 명물인 노란 택시들의 보닛과 트렁크 부분에 꽃그림을 넣은 것인데, 이 프로젝트에는 병원에 입원한 어린이와 어른 환자 약 2만3000명이 참여하였기에 더욱 인상적이다.

 

4장 「아주 사적인 영감」에서는 콘크리트 튜브를 개조하여 만든 1-2인용 동굴 호텔 <다스파크호텔>이 인상적이다. 가끔은 잠수를 타고 동굴로 들어가고 싶은 현대인들의 마음을 콕 짚어주는 작품이라고나 할까. 아이슬란드의 “랜드 오브 자이언츠”도 인상적이다. 누구나 눈살을 찌푸릴만한 대상인 흉측한 송전철탑에 예술을 덧입혀 거인의 형상으로 만들어 예술품으로 승화시키고 있다.

 

5장 「디자인 너머」에서는 “포이트리 POETREE”라는 유골함이 인상적이다. 단지 형태로 된 유골함에 고인의 유골을 담고 그 위에 묘목을 심게 된다. 생분해성 재료로 되어 있는 밑부분은 점차 사라지고 고인의 이름이 적혀 있는 상단의 도자기 부분은 영원히 남아서 고인을 기리게 된다. 폐기되는 무료 신문 쓰레기를 재활용하기 위해 1100개의 바람개비로 접어서 그물에 고정하여 도심에 시원한 그늘을 만들고 예술적 효과를 얻게 한 “리사이클 쉐도우” 프로젝트도 매우 인상적이다.

 

이상 5개의 장을 간략히 소개했는데, 마음 같아서는 32개의 디자인 하나하나를 모두 사진자료와 함께 소개하고 싶지만 혹여 스포일러가 되어 독자들의 읽는 즐거움을 방해할까 걱정이 되어 이 정도에서 마무리하고자 한다. 책을 읽는 내내 공통적으로 떠오르는 생각은 도대체 이런 기발한 생각을 누가 한 것일까 하는 것이었는데, 실제로 그 모든 프로젝트에는 창조자가 존재하고 있으며, 그들 모두에게 경의를 표하고 싶다.

 

인간과 동물에게 차이점이 있다면, 동물은 자연을 파괴하지 않으나 인간은 자연을 파괴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렇지만 신이 특별히 인간에게만 부여한 한 가지 차별성은 자연을 파괴할 수도 있고 창조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문제는 간단하다. 주어진 대로, 관습대로, 정해진 암울한 미래를 향해 살아갈 것인가. 아니면 우리에게 주어진 이 세상을 창조적으로 개선하고 공익에 기여할 것인가의 선택. 디자이너들 뿐만 아니라 각자 자기가 처한 자리에서 모두에게 주어진 과제가 아닐까 싶다. 다시금 말하거니와 흉측한 송전철탑을 거인 조각 예술품으로 만들어 아이슬란드의 광활한 대지를 판타지의 공간으로 재창조하는 힘이 우리 인간에게 이미 부여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조정미 시인, 출판인



글쓴이_ 조정미 (시인, 출판인)

서강대학교 국어국문학과와 언론대학원에서 문학과 출판을 전공했다. 1993년부터 PC통신을 시작하였으며 지금도 SNS와 블로그를 통해 수많은 이들과 소통한다. 디지털 기술의 발달이 인간 커뮤니케이션에 끼치는 영향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다른 코드를 가진 이들과의 소통을 위해 메타포가 필요하며, 이전 세대와 대화하기 위해 책을 읽고 다음 세대와 대화하기 위해 책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