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이란 명예와 자존심을 위한 것이라 믿어왔던 왕년의 프리마돈나 진. 그녀가 머무는 양로원에서 기획하는 작은 음악회를 준비하면서 음악이란 것이 완벽하지 않더라도 서로의 호흡과 감정을 함께 나누기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아 갑니다. 그리고 자신의 전성기 시절 목소리를 녹음한 음반만을 반복해 들으며 늙고 초라해진 자신의 모습을 거부하던 그녀는 마침내 현재의 시간으로 뛰어들며 늙은 성악가로 당당히 무대에 오릅니다. 은퇴한 음악가들의 삶을 다룬 영화 <콰르텟>, 최유준 음악평론가의 칼럼으로 함께 만나볼까요?

 

2010년 독일 체펠린 대학에서 수행한 한 조사연구에 따르면 클래식연주회에 참석하는 청중의 연령은 평균적으로 55세에서 60세 사이인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0년간 클래식음악 청중의 평균연령 증가 속도는 전체 인구의 평균연령 증가 속도에 비해 세 배나 빨랐으며, 향후 30년 내에 클래식음악 청중의 수는 3분의 1로 줄어들어 사실상 자연사 상태에 이를 것”이라는 적잖이 충격적인 분석이다.

 

클래식 음악계의 이런 현실을 고려하면, 은퇴한 음악가들의 삶을 다룬 영화 <콰르텟>을 단순히 노년의 삶에 대한 성찰을 담은 영화로만 볼 수는 없을 것이다. 기부금과 공적 자금으로 운영되는 고급 양로원 ‘비첨하우스’에 기거하고 있는 영화 속 노년의 음악가들은 내내 자신들의 휴양 시설에 대한 지원금이 끊길까 전전긍긍하는 모습이다. 그것은 영화 속 현실일 뿐만 아니라 문화와 제도로서의 클래식음악이 처한 냉정한 현실이기도 하다.

 


한국의 상황은 조금 다르지만 서양의 클래식음악 공연장에서
젊은이들의 모습을 찾기란 쉽지 않다.

<콰르텟>은 올해가 오페라 작곡가 베르디의 탄생 100주년이라는 사실을 고려하여 만든 영화답게 베르디의 오페라 아리아들이 흘러넘치지만, 영화의 줄거리는 진지한 두 남녀 주인공(레지와 진)과 다소 익살스러운 남녀 조역(윌프와 씨씨)이 이끌어가는 모차르트 오페라식의 구성을 따른다.
 

줄거리는 단순하다. 테너인 레지와 소프라노인 진은 젊은 시절 스타 성악가 커플로 결혼을 했지만 결혼식 직전 진이 저지른 한 순간의 불륜 행위와 레지의 오해가 겹쳐 결혼 첫날부터 파경을 맞았다. 배신감 속에서 여생을 보낸 레지는 은퇴 후 비첨하우스에서 살아오다가 어느 날 화제 속에 새로 입주하는 이가 진이라는 사실에 충격을 받는다. 영화는 이들 두 주인공이 젊은 날의 상처를 극복하고 따뜻한 용서와 화해에 이르는 과정을 담고 있다.

 

영화 속 두 주인공의 성찰은 물론 애정관계에 얽힌 그들 자신의 인생에 대한 것이지만 여기에 음악적 성찰이 절묘하게 맞물린다는 점이 흥미롭다. 레지는 비첨하우스에서 정기적으로 학생들을 위한 오페라 강좌를 해왔다. 비틀즈의 음악조차도 경멸했던 순수음악 지상주의자였던 그가 젊은이들의 음악을 이해하고자 노력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날의 특강에서 흑인 힙합소년과의 만남과 대화를 통해 레지의 경직된 음악관에 작은 균열이 생기는 순간, 비첨하우스를 찾은 진과 갑작스럽게 재회하게 되는 것이다.

 


영화 ‘콰르텟(2012)’의 한 장면, 주인공 레지는 흑인 힙합소년과 만나 음악적 성찰을 하게 된다.

 

비첨하우스에 온 뒤 진 역시 음악과 관련한 변화를 겪는다. 비첨하우스에서 기획하는 작은 음악회에서 30년 만에 <리골레토>의 사중창을 다시 부르자는 동료들의 제안을 처음 들었을 때 진은 불같이 화를 낸다. 왕년의 프리마돈나가 초라한 무대에서 늙어 빛바랜 목소리로 노래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화해를 청하러 온 씨씨에게 실수로 린치까지 가한 그녀는 차츰 자신의 아집과 독선에 상처를 입는 동료들의 모습을 깨닫게 된다. 그녀는 결국 사중창 무대에 서기로 결심한다.

 

자신의 전성기 시절 목소리를 녹음한 음반만을 반복해 들으며 과거에 묶여있던 그녀가 늙고 초라해진 자신의 모습을 받아들이고 현재의 시간으로 뛰어든 것이다. 그녀로서는 음악이 그저 명예와 자존심을 위한 것이 아니라 완벽하지 않더라도 서로의 호흡과 감정을 함께 나누기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처음 깨닫는 순간이기도 했을 것이다.

 


영화 ‘콰르텟(2012)’ 의 마지막 장면. 네 명의 늙은 성악가들이 <리골레토>를 부르기 위해 무대로 올라온다.

 

힙합소년이 지켜보는 무대에 네 사람의 늙은 성악가가 당당하게 서는 장면으로 영화는 막을 내린다. 영화의 크레딧과 함께 흘러나오는 <리골레토>의 사중창은 다소 얄궂게도 오페라 속 네 남녀가 사랑의 배신과 치정이 얽힌 불꽃같은 감정을 분출하는 대목이다. 그것은 레지와 진이 과거의 묵은 상처를 씻어내는 제의적 과정과도 같아 보인다.

 

서로 다른 네 목소리가 얽혀들며 서로 다른 내면의 감정을 정밀하게 그려내는 사중창, 그것은 서양 근대음악, 곧 클래식음악이 이루어낸 독창적 성과임에 분명하다. 늙은 성악가들이 부르는 <리골레토>를 들으며 힙합소년조차 그렇게 느꼈을 것이다. 레지와 힙합소년이 서로를 인정했듯이, 진이 화석화된 과거의 명예와 자존심을 버리고 살아있는 앙상블을 선택했듯이, 클래식이 스스로의 독선과 아집을 버릴 수 있다면 다시 세상과 화해할 수 있지 않을까? 영화 <콰르텟>이 ‘늙어버린 클래식’에게 던지는 물음이다.

 

아르떼365 최유준 음악평론가

글 | 최유준 (음악평론가)

서울대와 동아대에서 음악미학과 음악학, 문화연구를 전공했다. <월간 객석> 등의 지면을 통해 음악평론가로 활동해 왔으며, 현재 전남대학교 감성인문학사업단에서 HK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다. 음악과 대중문화를 주된 텍스트로 삼아 사유의 경계를 넘나드는 다양한 비평적 노력을 해왔다. 저서로 『음악문화와 감성정치』, 『예술음악과 대중음악, 그 허구적 이분법을 넘어서』 등이 있으며, 번역서로 『지식인의 표상』, 『비서구 세계의 대중음악』, 『아도르노의 음악미학』, 『뮤지킹 음악하기』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