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부터 노인까지 평범한 시민들이 직접 영화를 만든다? 수원문화재단의 시민영화제작소에는 ‘카사노바’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다양한 시민영화감독들이 있다고 합니다. 그들이 만든 ‘시민영화’에는 각자의 경험과 삶의 이야기가 물씬 배어나온다고 하는데요. 오늘은 시민영화제작소 ‘카사노바’를 기획한 오점균 감독에게 그 이야기를 들어볼까요?


 

Q. 시민영화제작소를 만들게 된 계기와 이유는 무엇인가요?

2011년 5월에 수원의 시인, 화가, 사진가 등 문화인들과 함께 ‘영사기’(영화사랑 세상 읽기)라는 영화감상 동호회를 만들어 활동하고 있었습니다. 수원화성박물관에서 월 1회 아프리카, 남미 등을 포함한 여러 나라의 다양한 예술영화를 상영했습니다. 관객들은 하루 평균 50-60명이었는데, 기존의 상업영화와는 다른 영화 세계의 신선한 바람을 느껴서인지 관객들의 반응이 무척 좋았어요. 그러던 중 2012년 2월 수원화성박물관 이달호 관장님께 “영화를 수동적으로 감상만 하지 말고, 시민들이 직접 만들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면 좋겠다.”고 제안하였죠. 그래서 처음에는 ‘시민영화제작 강좌’를 개설하게 되었어요. 요즘은 영상장비가 발달해서 누구나 쉽게 영화를 만들 수 있고, 시민들 자신의 경험과 꿈을 담은 영화들이 나온다면 사회도 밝아지고 풍성해질 것 같았거든요.

 

Q. 시민영화제작소 이름이 ‘카사노바’인데, 어떤 의미에서 지으신 건가요?

시민영화제작교실을 통해 1기, 2기의 수원시민영화감독이 탄생하였어요. 그들과 함께 단체를 만들게 되었고 ‘카사노바’라는 이름을 지었습니다. 뜻은 ‘카메라로 사람들과 노래하며 세상을 바르게 담는다’ 입니다.

 

Q. 시민영화제작소를 운영하시면서 어려웠던 점이 있었다면 무엇인지요?

‘나도 영화를 만들 수 있다’라는 부제를 달고 시민영화제작교실 강좌를 열게 된 첫날, 정원을 초과해 강의실에 빼곡하게 앉아있는 수강생들을 대면했어요. 예상보다 많은 분들이 와주셨는데, 직업은 물론 연령도 20~30대에서 60~70대까지 참으로 다양했죠. 사실 ‘제대로 된 영화 한 편이라도 만들 수 있을까?’하는 의문이 먼저 들면서 당황스러웠어요. 영화제작은 공동 작업이라 우리나라 특유의 나이와 선후배 따지기 문화는 영화 작업에 걸림돌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고민 끝에 모든 수강생들의 호칭을 각자의 이름 뒤에 ‘님’을 붙여 부르게 하였고, 나이에 상관없이 발언기회를 똑같이 주어 혹시 나이가 적거나 여성이라고 주눅 들지 않도록 했어요. 시간이 지나 자신들이 만들 영화 시나리오에 대한 구상을 얘기하며 속에 있던 얘기들을 털어 놓는 등 친해지자 서로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져 분위기가 살아났어요.

 

Video시민영화제작소 3기 수업과정을 담은 다큐 ‘오점균 감독과 함께한 100일’

Q. 참여한 시민들이 대부분 영화제작은 처음이었을 것 같은데, 어떻게 도와주셨나요?

평범한 회사원부터 주부, 60대 노인까지 다양한 수강생들이 저마다의 방법으로 영화 스토리에 자신의 삶을 담아가더라고요. 시민들이 만드는 영화에는 일종의 규칙과 문법으로부터 자유로운 길들여지지 않은 멋이 있었어요. 때문에 강의 시간에는 영화언어의 규칙을 강조하기보다는 각자가 풀어내려는 내러티브에 필요로 하는 만큼만 선택적으로 도와주는 것, 그래서 만드는 사람의 감성이 온전히 드러나도록 도와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Q. 그렇다면 시민영화감독들이 구상한 영화는 어떤 내용인지 간략하게 소개해주세요.

70세가 되어 평생교육원에서 배움의 갈증을 해소하고 자아를 찾은 할머니의 이야기도 있고요. 30대 후반의 손자에게는 무섭게만 여겨졌던 할아버지와 소통하게 된 내용도 있어요. 또 아버지에게는 회사 다녀온다고 말하고 실제로는 아파트 경비원으로 일하는 박사학위를 가진 청년 이야기도 있죠. 이밖에도 첫사랑 남자와의 일탈을 꿈꾸는 중년주부의 백일몽 등 각자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시민영화는 친근하면서도 싱싱한 감동과 매력이 있어요.

 

Q. 시민영화만의 특징으로는 어떤 점이 있나요?

시민영화의 특징은, 상업영화처럼 흥행에 대한 강박으로 과장되게 이야기를 푼다거나 독립영화처럼 진실에 대한 투쟁으로 관객으로 하여금 심리적 불편을 감수하며 보게 하지 않아요. 자신의 체험을 진정성 있게 만들어 내용이 진솔하고 쉽게 공감이 되죠. 요즘 많은 사람들이 ‘경제민주화’에 대해 말하는데요. 저는 ‘영상민주화’도 논할 때가 됐다고 생각해요. 시민들의 자발적인 힘으로 영화를 만들고 향유하면서 생활 속에서 건져 올린 싱싱한 이야기들은, 대자본의 논리로 규격화된 영화에서는 느낄 수 없는 사람냄새가 스며있거든요. 그래서 만든 사람과 보는 사람을 수평적으로 연결해주어 연대감을 갖게 합니다.

 

Q. 앞으로 시민영화가 사람들에게 어떤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을까요?

건강한 개별성을 담고 있는 ‘시민영화’는 관객들이 시민으로서의 자신을 돌아보게 하고 이웃과 교감하게 할 것이에요. 또 시민의 삶과 마을을 배경으로 했기 때문에 ‘지역의 스토리’로 발전시킬 수도 있고, 그것을 통해 마을 구성원들이 서로 소통하고 공감하며 공동체문화가 자연스럽게 만들어질 것이라 믿습니다.

 

Q. 시민영화제작소의 향후 계획과 앞으로의 바람을 말해주세요.

현재 시민영화 감독들과 함께 9월 한 달 동안 열릴 수원생태교통페스티벌에서 상영될 단편영화와 다큐멘터리를 준비하고 있어요. 그 영화들을 통해 기후변화와 석유자원이 고갈된 미래를 대비한 자동차 없는 생활(수원 행궁동 ‘차 없는 거리’ 행사)을 체험해 보자는 프로젝트의 취지가 널리 알려졌으면 해요. 더불어 시민들이 그동안 자신들의 삶에서 받은 상처가 영화 제작을 통해 치유되길 바랍니다. 그리고 ‘카사노바’의 시민영화 만들기처럼 작지만 의미 있는 시도가 지속되어서 몇 년 후에는 장편 시민영화가 극장가에서 잔잔한 바람을 일으키는 날이 오기를 기대합니다.

 
 

ㅡ 수원문화재단 시민영화제작소 ‘카사노바’ 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