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사람보다 여러 사람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면 더 나은 방법이 나오지 않을까요? 개인의 이기심으로 사유지만큼 공유지는 애써 가꾸지 않는다는 정설과 다르게, SNS와 첨단 과학기술이 만나며, 위키피디아, 소셜펀딩 등의 이른바 ‘집단지성’이 꽃을 피우기 시작했습니다. 2009년 여성 최초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엘리너 오스트롬이 말하는 ‘공유의 비극을 넘어’ 그 대안에 대해 함께 살펴볼까요?

 

양과 가축을 키우는 농가들이 모여 사는 공동체 공간에 사유지와 공유지가 함께 존재한다면 공유지는 반드시 황폐화된다는 게 정설이었다. 개인의 이기심은 자신의 사유지만큼 공유지를 가꾸지 않게 만들기 때문이다. 공유된 초지에 너무 많은 양과 가축이 방목됨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공유지를 애써 가꾸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이것이 1968년 미국의 생물학자 가렛 하딘이 주장한 ‘공유지의 비극(The tragedy of commons)’이다. 그 결과 공유지의 관리는 국가의 몫으로 돌려졌고 오히려 사유화만이 이 비극의 유일한 해결책으로 주장되어 왔다.

공유의 비극을 넘어

엘리너 오스트롬 저 | 윤홍근, 안도경 역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08.18

그러나 하이테크가 새로운 사회적 연결망과 결합하여 집단적 지혜와 지성이 꽃을 피우기 시작하는 지금의 사회현상들은 반드시 공유지의 비극이 꼭 맞는 것은 아니라고 어려운 증거들을 제시하고 있다. 세계인들의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헌신과 봉사로 만들어내는 온라인 백과사전 위키피디아, 온라인 서평과 제품사용 후기를 통한 소비자들의 혁신참여사례들, 군중들의 푼돈을 모아 거대한 영화제작비를 감당하는 소셜펀딩 등. 이러한 특징적 현상들은 이기심에 의해 공공의 자산이 파손되는 것이 모든 시대와 사회에 일관되게 적용되지만은 않는다는 증거를 보여준다.

 

공유지가 성공적으로 운영될 수 있으며 오히려 사유지를 더 풍요롭게 만들 수 있다는 이론을 제시한 미국의 여성학자가 있다. 엘리너 오스트롬은 1990년 출간한 ‘공유의 비극을 넘어’에서 새로운 주장을 펼친다. 세계 여러 곳의 공유지 사례를 직접 분석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오랫동안 부락에서 잘 관리되던 산림이 ‘공유의 비극’ 논리에 따라 국유화된 후 충분한 감시 인력을 고용하지도 못할 뿐더러, 감시 인력 자체가 상습적으로 뇌물을 받아 오히려 산림이 파괴되는 현상이 세계 각처에서 발생하였다. 반면, 당사자들 사이의 자율적인 규제를 통해 공유재를 고갈시키지 않고 보존하며 이익을 누리는 여러 가지 사례들이 있었는데, 정교한 조업 규칙을 만들어 어장을 관리하는 터키의 어촌, 방목장을 함께 쓰는 스위스의 목장지대, 농사용 관개시설을 공유하는 스페인과 필리핀의 마을 등등 약 1000년의 세월 동안 공유자원을 잘 관리해 온 공동체들이 그것이다.

 

중앙 정부의 관리들이었다면 상당 기간 이 분야에서 종사해 온 전임관리에게 맡기지 않는 한 이처럼 정교한 규칙 체계를 만들어내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 이와 같은 방대한 정보는 다양한 지도와 운영체계를 가지고 10년 이상 시험해본 어부들이 아니면 만들 수 없었을 것이다. 알라니아는 참여 구성원 스스로에 의해 규칙이 고안되고 수정되며, 규칙의 감시와 집행 역시 그들 스스로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자치적 공유재 관리제도의 한 예를 보여준다. (p.52)

 

엘리너 오스트롬은 2009년 여성 최초로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하게 되었는데, 선정위원회는 특히 이 책을 가장 중요한 업적으로 꼽았다. 선정위원회는 이 책에 대해 “공유자원은 제대로 관리될 수 없으며 완전히 사유화되거나 아니면 정부에 의해서 규제되어야 한다는 전통적인 견해에 도전”하였고 수많은 사례들에 대한 경험적인 연구를 바탕으로 “사용자들이 자치적으로 관리하는 세계 도처의 공유자원 관리체계에서 나타나는 정교한 제도적 장치들”을 발굴하여 소개하고 이론적으로 분석하는 성과를 거두었다고 밝혔다.

 

하딘이 엄격한 아버지의 모습으로 인간의 부패성과 우매함을 냉정하게 지적하고 비판하였다면, 오스트롬은 자상한 어머니의 손길로 인간의 숨겨진 가능성을 일깨워 주며 “해답은 우리 인간에게 이미 주어져 있어. 이제 우리 다시 한 번 해볼까?”라고 희망의 메시지로 격려해주는 듯하다. 엘리너 오스트롬의 위대함은 그녀의 삶의 모습에서도 공유지의 비극을 넘어서기 위한 노력을 엿볼 수 있기에 더욱 빛을 발한다. 세계대공황과 제2차 세계대전의 악몽 속에서 만성적인 물자 부족에 시달리며 유년기를 보냈기에, 그와 같은 파국을 막기 위해 인간의 협동을 어떻게 자발적으로 이끌어낼 것인가라는 주제에 평생을 헌신해 왔다.

 

1933년 미국 LA의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난 그녀는 스스로 대학의 꿈을 키워 UCLA에서 정치과학을 전공했고 1954년 졸업 뒤 직장생활을 하다가 다시 대학원에 들어가 1965년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 과정에서 여러 가지 난관을 겪어야 했다. 이 어려움을 잊지 않고 자신과 남편의 월급 절반을 연구실 제자들을 위해 사용했다고 한다. 자식이 없는 노부부에게 있어 제자들이 자식들이라는 것이다.

 

학문적 스승이자 동료로서의 남편과의 결혼생활도 감동적이다. 자신의 지도교수였던 14년 연상의 빈센트 오스트롬과 1963년에 결혼하였다, 빈센트 오스트롬이 1964년 인디애나대의 정치학과 교수가 되었으며, 계약직 교수 자리가 생겨 엘리너 오스트롬이 합류하게 된다. 이후 두 사람은 연구센터인 ‘정치이론 및 정책분석 워크숍’을 만들었고 위대한 학문적 성과들을 이루어냈다. 엘리너 오스트롬은 2012년 6월 12일 췌장암으로 세상을 떠났으며 남편 빈센트 오스트롬도 17일 뒤에 세상을 떠났다. 50년을 함께 한 삶이었다.

 

전 세계 곳곳의 공동체를 찾아다니며 희망의 디자인을 연구한 엘리너 오스트롬. 그녀의 시선은 많은 것을 갖지 못한 가난한 공동체 구성원들을 향하고 있었다. 그녀의 연구를 통해 삶의 현장으로부터 추출되어진 희망의 디자인은 우리의 삶 곳곳에 이식되어져야 할 필요가 있다. 말년의 엘리너 오스트롬이 가장 집중했던 문제는 지식이 사회적 공유지로서의 전형적인 특징과 패턴을 지니며 이를 통해 공유지로서의 지식을 활성화시킬 수 있는 방안에 대한 것이었다. 이는 지식과 창조성이 산업발전의 핵심동력으로 떠오르고 있는 21세기에 새로운 화두를 던져준다. 이 부분과 관련해서는 오스트롬이 편집하여 출간한 책 『지식의 공유』(타임북스)를 강력 추천한다.

 

조정미 시인, 출판인

글 | 조정미 (시인, 출판인)

서강대학교 국어국문학과와 언론대학원에서 문학과 출판을 전공했다. 1993년부터 PC통신을 시작하였으며 지금도 SNS와 블로그를 통해 수많은 이들과 소통한다. 디지털 기술의 발달이 인간 커뮤니케이션에 끼치는 영향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다른 코드를 가진 이들과의 소통을 위해 메타포가 필요하며, 이전 세대와 대화하기 위해 책을 읽고 다음 세대와 대화하기 위해 책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