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 살기도 힘든 판에 무슨 문화냐’ 문화예술교육 관련 종사자들이 자주 듣는 이야기가 아닐까요? 이러한 사람들의 생각에도 불구하고, 각 지역에서 문화예술의 발전을 위해 힘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문화현장 관계자들이 말하는 지역문화의 현재와 미래에 대한 고민은 어떤 내용일까요? 이에 인천문화재단과 경인일보는 각 분야의 전문가 10인을 인터뷰해서 책 ‘지역문화, 길을 묻다’로 엮어냈는데요. 저자인 인천문화재단 이현식 팀장의 이야기를 들어볼까요?

 

지역문화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 그리고 어려움

 

Q. 지역문화 현장의 관계자들이 겪는 어려움에는 어떤 것이 있나요?

지역문화의 현장에서 일을 하다 보면 겪게 되는 어려움 중의 하나가 재원(財源)의 문제입니다. 물론 다른 분야라고 해서 재정문제를 겪지 않는 것은 아니지요. 그렇지만 문화 분야에서 일을 할 때 겪는 재정 문제는 그 차원이 조금 다른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구조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관념의 문제와 얽혀 있다고 판단되기 때문입니다. 재정 문제 일반이 아니라 문화이기 때문에 겪게 되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 하나가 문화의 특수성인데요. 순수하게 경제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문화는 투입과 산출이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렇다 보니 문화 영역에서 일을 하면서 공공의 재원을 확보하기 위해 왜 재정 투여가 필요하고, 그렇게 되면 어떤 문제가 어떻게 개선될 수 있는지를 객관적으로 입증하고 설득하기 어렵게 되지요. 지역의 문화 현장에서 재원 확보가 쉽게 되지 않는 이유 가운데 문화가 갖고 있는 이런 특수성의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천 알라 문학포럼
2012 인천왈츠 – 어떤 여행(좌)과 2013 인천 알라 문학포럼(우) 현장

 

Q. 앞서 사람들의 관념의 문제와 얽혀 있다고 하셨는데, 문화 현장의 관계자로서 느끼기에 우리 사회의 문화에 대한 인식이 어떻다고 생각하시나요?

사람들의 관념의 문제는 깊이 생각해 보면 우리 사회의 문화에 대한 일반적 인식과 연결되어 있다는 데에 심각성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예컨대 흔히 하는 말로 ‘먹고 살기도 힘든 판에 무슨 문화냐’라는 말이 그런 인식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경우지요. 이 말 속에는 먹고 사는 문제와 문화를 별개라고 생각하는 인식이 강하게 똬리를 틀고 있습니다. 경제와 문화, 일상적 삶과 문화는 다른 영역에 존재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죠. 그렇다면 문화는 무엇이고, 정말 문화가 경제적인 영역과는 별개일까요? 여기에서 이와 반대의 논리도 자연스럽게 등장합니다. 문화를 통해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인데, 문화산업론이 대표적이죠. 헐리우드 영화 한편이 자동차 몇 대의 수출과 맞먹는다는 주장들이 문화산업론에서 흔히 등장하는 논리입니다. 그러나 이런 논리 역시 문화와 경제를 별개로 인식하는 앞의 논리와 근본적으로 다른 것은 아닙니다. 문화와 경제가 별개이듯, 문화 곧 경제라는 논리는 동전의 앞뒷면처럼 본질은 같은 것이니까요. 문화 자체가 갖는 고유성과 의미에 대한 인식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지요. 문화는 경제와 이항 대립으로 존재하거나 경제적 효과와 동일시되어서는 안 됩니다.

 
 

지역문화의 현재와 미래를 고민한 작업
10인의 전문가에게 듣는 지역문화의 현장과 미래

 

지역문 문화, 길을 묻다

Q. ‘지역문화, 길을 묻다’라는 책을 기획하고 출간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인천문화재단에서 일을 하면서 ‘문화는 무엇인가?’ 생각하며, 이런 문제를 뭔가 근본적으로 검토하고 사회적으로도 환기시키는 일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인천문화재단과 경인일보 공동 기획으로 문화 현장에서 일하는 전문가와 활동가, 연구자들을 집중 인터뷰함으로써, 문화의 의미와 가치를 근본적으로 점검하고 알리는 지면을 매주 한 번씩 꾸미게 되었죠. 작년 여름이 끝나갈 무렵부터 겨울 초입까지 10회에 걸쳐 전문가를 인터뷰하고, 그 결과를 신문 지면에 연재하는 기획은 생각보다 힘들었지만 의미 있는 일이었습니다. 현장의 문화 전문가들은 격정적으로 많은 말을 쏟아내었는데, 이들의 열정이 담긴 말을 신문 한 면에 모두 담기에는 한계가 있어 결국 연재가 끝난 뒤 다시 녹취를 풀어 단행본으로 출간하는 작업을 했습니다. 올 봄에 나온 ‘지역문화, 길을 묻다 – 10인의 전문가가 들려주는 지역문화의 현장과 미래'(소명출판)는 그 결과물입니다.

 

Q. 책 ‘지역 문화, 길을 묻다’는 어떤 내용인가요?

이 책에는 문화 정책의 현장에서 일하는 전문가, 공공 재정을 연구하는 교수, 재단을 운영하는 대표자, 대규모 공연장의 운영 책임자, 지역문화 관련 활동가 등 문화 영역 곳곳에서 활동하는 전문가 열 사람이 문화와 지역문화에 대해 여러 얘기들을 쏟아 놓고 있습니다. 경쟁과 효율을 중요시하는 오늘날 왜 문화가 중요한지, 문화가 얼마나 공공적 가치를 담고 있는 것인지, 공동체의 유지와 네트워크의 기제로서 문화가 갖는 역할은 무엇인지, 문화 산업을 제대로 키우는 길은 어디에 있는지, 지역 문화가 발전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등이 거론되고 있죠. 인터뷰 형식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이런 주제들이 조금 더 생동감 있고 자유롭게 다뤄지고 있고, 생활과 경험 속에서 우러나오는 전문가들의 생각이 가감 없이 전달됩니다. 이런 책을 통해서 문화의 가치가 조금 더 공유되고, 오늘날 문화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어떤 고민들을 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고 생각해요. 또한 앞에서 제기한 문화의 가치를 되새겨보고 생각하는 기회도 얻게 될 것입니다.

 
문화 전문가 인터뷰
 

Q. 책 작업을 하시면서 인터뷰 하셨던 분 중 가장 인상 깊었던 분과 내용은요?

경희대 도정일 교수님이 가장 인상 깊었습니다. 문화헌장 얘기 때문이지요. 교수님께서 문화에 대한 깊은 성찰을 바탕으로 문화 헌장을 추진했던 과정, 그리고 그것이 제대로 현실화되지 못한 부분에 대해 굉장히 아쉬운 마음을 갖고 있다는 것이 인터뷰 내내 느껴졌습니다. 문화헌장에는 우리가 지향해야 할 문화가 과연 어떤 내용이어야 하는가가 매우 잘 정리되어 있습니다. 한국 사회가 당면한 문화적 과제 역시 이 헌장을 보면 잘 알 수도 있고요. 그분의 문화에 대한 순수한 열정과 아쉬움이 잘 느껴졌습니다.

 
 

지역문화 현장에서 전해오는 문화의 정의와 역할

 

Q. 지역문화 현장에서 오랫동안 일해오신 분으로서, ‘문화’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사실 지역문화의 현장에서 일을 하다 보면 매너리즘에 빠지고 많은 일에 파묻혀 우리 스스로도 기능주의에 치우칠 때가 많습니다. 그때그때 처리해야 할 일들을 기능적이고 행정적으로 대하게 되는 위험을 피할 수 없는 경우도 있는 것이죠.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면 문화는 우리 삶의 기저와 기초를 이루는 것입니다. 기초가 튼튼하지 않으면 근본부터 붕괴되지요. 그렇게 된다면 개인의 삶에도 공동체의 미래에도 모두 바람직스러운 일은 아닙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가 어느 길을 가고 있는 것인지, 그게 바람직스러운 것인지를 반성적으로 돌이켜보도록 만드는 것이 문화가 갖고 있는 근본적인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기획을 위해 현장에서 일을 하는 전문가들과 만남을 이어가면서 자연스럽게 들었던 생각이 있습니다. 오늘날과 같은 삶의 방식에 대해 근본적인 회의와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 문화의 역할이고, 대안적 상상력을 통해 미래의 가치 있는 삶을 그려나가는 것이 문화가 해야 할 책무라는 것입니다.

 

이현식 인천문화재단 정책연구팀장 겸 한국근대문학관 관장

1966년 인천 생, 연세대 영문과 졸, 연세대 대학원 국문과 졸(문학박사), 1997년 ‘문학과사회’(문학과지성사 간) 평론 추천으로 등단, 인천발전연구원 연구위원(문화정책 담당)을 역임하고 2005년부터 인천문화재단 사무처장, 기획경영본부장을 거쳐 현재 인천문화재단 한국근대문학관 관장으로 재직하면서 인천문화재단 정책연구팀장을 겸하고 있다. 추계예대 대학원 겸임교수를 역임한 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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