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예술교육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세계적인 스타 우피 골드버그는 난독증이 있지만, 예술이라는 가장 안전하고도 편안한 소통 수단이 있어 스스로를 정상적으로 느끼고 자신을 잘 표현할 수 있다고 합니다. 또 배우 로지 페레즈는 청소년기에 가졌던 분노가 예술로 인해 열정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미국의 유명 예술가와 연기자, 교육자 22명이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말하는 예술교육 이야기 『뮤즈, 학교에 가다』. 함께 살펴볼까요?

 

추억 하나.
중학교 시절, 매우 특별했던 국어선생님께서 교과서에 실린 희곡 ‘원술랑’을 라디오 드라마로 녹음해 오는 조별 과제를 내주셨다. 각종 효과음을 어떻게 처리하는가 하는 것이 과제였는데, 한번 아이디어의 뚜껑이 열린 친구들에게서 기발한 생각들이 쏟아져 나왔다. 칼을 뽑는 효과음은 접시에 식칼을 스르륵 스치게 함으로써, 군중들의 환호성 소리는 당시 유행했던 댄스곡 “원티드”로 과감하게 대체함으로써 대성공을 이루었다.

 

추억 둘.
고등학교 시절, 또한 특별했던 무용선생님께서는 비발디의 “사계”의 중 하나의 주제를 선택하여 무용극으로 창작시연하는 조별 과제를 내주셨다. 우리 조는 “가을”을 선택하여 흥겨운 풍년의 수확 장면과 악덕지주의 착취,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스토리텔링으로 구성했다. 바이올린을 켜는 악사, 춤추는 허수아비, 망토와 채찍으로 무장한 악덕지주의 설정 등 깨알 같은 재미는 우리 모두의 머리에서 나온 것들이고 우리들의 몸으로 보여준 것들이었다.

 

『뮤즈, 학교에 가다』를 읽으면서 떠오른 두 가지 추억의 이야기다. 우리 조는 두 경우에서 모두 A를 받았는데, 사실 연습하는 내내 A를 받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즐겁고 행복했으며, 우리가 이런 일을 할 수 있다는 사실에 우리 스스로 놀랐기 때문이다. 이처럼 예술교육은 의외의 것을 아이들에게 제공한다. 협동심을 배우기도 하고, 반복적 연습을 통해 인내심을 향상시키기도 한다. 그리고 가슴이 벅차도록 멋진 무대를 경험하고, 우레와 같은 박수를 받게 된다. 터질 것 같은 만족감과 희열이 아이들의 내면을 가득 채운다. 그런 경험은 예술교육이 아니고서는 도저히 경험할 수 없는 것들이다.

 

그렇지만 그 시절에도 이처럼 멋진 일들이 항상 벌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대부분의 수업은 강압적이고 반복적인 학습이 주류를 이루었다. 최근의 교육현실로 보면 더욱 암담하다. 예술교육은 완전히 뒷전이 되어 버렸다. 미국의 현실도 마찬가지다. 이러한 미국의 현실에 대해 안타까움을 갖고 있는 22명의 예술가와 교육자들이 함께 집필한 책이 『뮤즈, 학교에 가다』이다. 모두 열 가지 주제를 통해 우리 아이 교육에 예술이 필요한 이유를 역설한다.

 

뮤즈, 학교에 가다

허버트 콜, 톰 오펜하임 저 | 주은정 역
디자인하우스 | 2013.07.15

 

이 책의 구성은 매우 흥미롭다. 우선 10가지 주제로 장이 구성되어 있는데, 각각의 장에는 예술가와 저명한 교육자가 짝을 이루어 필진으로 참여한다. 유명한 예술가와 연기자들의 자전적인 글과 함께 저명한 교육자들의 해설과 짝을 이루게 된다. 각각의 장에서 세계적인 스타인 우피 골드버그, 필립 세이무어 호프만, 로지 페레즈, 필리샤 라샤드 같은 예술가들의 고백을 들을 수 있다. 그들은 학창시절에 예술을 만나 인생의 변화를 경험하게 되었으며, 예술을 통해 내면을 발견하고 창의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그리고 그러한 경험을 기반으로 어떤 교육프로그램을 시행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나는 금방이라도 싸울 듯한 기세였지만 그 연극 공연을 보는 동안은 마음을 졸이며 눈물을 흘렸다. 연극을 보는 내내 흐느꼈는데, 몇몇 학생이 낄낄 거렸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 사실, 나는 연극에 완전히 사로잡혀 있었다. (…) 이전에 경험한 다른 예술공연도 좋았지만, 이 연극은 내 삶을 바꾸어놓았다. – p. 32 (로지 페레즈, 배우)

 

나는 난독증이 있어 다른 사람보다 읽는 데 시간이 좀 더 오래 걸린다. 그러나 내가 본 것을 말할 수 있다. 난독증을 앓는 매우 많은 사람들이 예술계에 진출한다. 우리 같은 사람에게는 예술이 안전하고도 편안한 소통 수단이기 때문이다. 그 사람이 화가든 무용가든 배우든 간에 예술은 스스로 정상적이라고 느끼는 자신을 표현하는 방식이 되어준다. – p. 176 (우피 골드버그, 배우)

 

이들의 고백과 짝을 이루어서 저명한 교육자들이 이들의 경험과 활동이 어떤 교육적, 사회적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를 짚어줌으로써 이 책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예술교육의 필요성에 설득력을 더한다.

 

로지 씨에게 (…) 내가 ‘어둠 속의 눈물’이라 이름 붙인 당신의 에세이는, 청소년들의 삶에서 예술이 발휘하는 힘에 대해 말해줍니다. 우리는 당신을 통해 예술이 분노를 능동주의로 바꾸는 계기를 마련한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 p. 50 (미셸 파인, 교육자)

 

우피는 예술을 접하는 데 공립학교나 그녀가 다녔던 가톨릭계 학교에 의지하지 않았다. 그녀는 활기찬 도시가 자신에게 제공해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활용해 혼자서도 아주 잘해온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그녀는 학교가 학생들로 하여금 음악과 무용, 다양한 형태의 예술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갖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 p. 184 (다이안 라비치, 교육자)

 

스무 명의 필진이 쓴 스무 편의 에세이에는 자신의 삶의 진정성, 예술교육에 대한 열정과 전문성이 담겨져 있다. 그렇다면 이 놀라운 책은 어떻게 만들어진 것일까? 이 책의 편집자인 허버트 콜과 톰 오펜하임의 인상적인 머리말과 서문을 통해서 엿볼 수 있다. 작가이자 교사이며 운동가인 허버트 콜은 머리말에서 공교육에서의 예술의 필요성을 이야기하는 이 책의 출간의도를 들려준다. 스텔라 아들러 연기 스튜디오의 예술감독인 톰 오펜하임은 서문을 통해 예술과 사회정의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들에 의하면 창조적인 예술은 모든 교육의 핵심 요소로서, 예술은 학생들을 학문적으로도 개인적으로도 발전시킬 수 있는 수단으로써 교육에서 중요한 요소가 된다는 것이다.

 

시험과 산업의 복합체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사용하는 주 무기는 두려움이다. 즉, 자녀가 좋은 대학에 들어가지 못하거나 좋은 직업을 구하지 못할까 봐 걱정하는 부모의 두려움과 부모와 사회의 인정을 받지 못할까 봐 걱정하는 아이의 두려움을 이용하는 것이다. 그에 반해 사회적인 소통 매체와 예술활동은 청소년들에게 보상 작용을 한다. – p. 8 (허버트 콜의 머리말에서)

 

예술교육의 목적은 예술가들을 대량으로 생산해내는 것이 아니다. 예술교육은 모든 사람에게 필수적이고, 청소년으로 하여금 시간이 흘러도 변치 않는 영원한 소통의 언어를 습득하도록 유도하는 역할을 한다. 우리는 경제적인 지위나 여건과는 상관없이 모든 아이에게 예술을 보급하기 위해 노력하며, 이를 통해 청소년들이 스스럼없이 말하고 볼 수 있게 되어 자신의 인간성을 충분히 경험하도록 돕는다. 이는 종종 기회가 거의 없거나, 풍부한 상상력이 삶과 죽음의 문제 외 직결 될 수 있는 저소득 지역에서 특히 중요하다. – p. 19 (톰 오펜하임의 서문에서)

 

이 책을 읽는 내내 질투와 불안감에 사로잡혔던 것을 숨길 수 없다. 우리 교육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과 함께, 나는 지금 다음 세대를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가 하는 자책이었다. 그런 점에서 오래 전 척박했던 교육 현실 속에서도 우리들에게 드라마녹음이나 창작무용발표 같은 유별난 과제를 통해 새로운 기쁨과 열정을 알게 해주셨던 나의 선생님들께 감사를 보내고 싶다. 예술교육은 예술가를 만들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아니라, 더 나은 사람을 만들어 주기 위해서 존재한다고 역설하는 배우 로지 페레즈의 이야기가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과제로 느껴진다.

 

예술은 그들을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준다. 예술을 통해 이해심 있는 사람이 되기 때문이다. 이해심 있는 사람은 보다 나은 사회 구성원이 된다. 직장에서 능숙하게 대인관계를 맺을 수도 있다. 또 예술을 통해 협력하는 법을 배울 수 있다. 우리는 시인이나 화가를 배출하려는 것이 아니다. 이 세계를 보다 나은 곳으로 만들 수 있는 자립적인 인간을 만들고자 한다. 그들은 과학자가 되거나 소설가나 미국 대통령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예술의 역할이다. 예술은 당신을 보다 나은 사람으로 만든다. 나는 전적으로 그렇게 믿으며 그래서 예술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 p. 45 (로지 페레즈, 배우)

 


조정미

글쓴이_조정미 (시인,출판인)

서강대학교 국어국문학과와 언론대학원에서 문학과 출판을 전공했다. 1993년부터 PC통신을 시작하였으며 지금도 SNS와 블로그를 통해 수많은 이들과 소통한다.
디지털 기술의 발달이 인간 커뮤니케이션에 끼치는 영향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다른 코드를 가진 이들과의 소통을 위해 메타포가 필요하며, 이전 세대와 대화하기 위해 책을 읽고
다음 세대와 대화하기 위해 책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