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더박스 로먼 크르즈나릭

낯선 역사에서 발견한 좀 더 괜찮은 삶의 12가지 방식

 

로먼 크르즈나릭 저 | 강혜정 역
원더박스 | 2013.04.01

 
 

어떤 종류의 컴퓨터 게임을 시작해도 라이프(생명)는 3개에서 5개가 주어지고, 초보는 1-2개의 라이프를 소모하면서 룰을 익히게 된다. 그런 점에서 삶이란 참으로 억울한 게임이다. 스스로 선택하지 않았으나 시작되었으며,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박차고 나갈 수는 없으며, 오직 주어진 길이라고는 최선을 다해 살아야만 하는 것. 게다가 라이프는 1개밖에 없는 단판 게임이다.

 

더 잘 살고 싶은 현대인의 욕망이 팽배해질수록 수많은 자기계발서가 횡행하지만, 아쉽게도 그런 책들은 쉽게 실망을 주곤 한다. (한때 유명 자기계발서 저자였던 사람들을 기억해 보라) 그렇다면 우린 어떤 삶의 솔루션을 찾을 수 있을 것인가?

 

문화사상가이자, 알랭 드 보통이 지인들과 공동 설립한 인생학교(The School of Life)의 초대 강사진이자, 『인생학교: 일에서 충만함을 찾는 법』의 저자인 로먼 크르즈나릭. 그는 “원더박스”의 맨 첫 페이지에 괴테의 한 마디를 인용하면서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솔루션을 제공한다.

 

“지난 3,000년 역사를 활용하지 못하는 사람은 하루살이 같은 인생을 살 뿐이다.” – 요한 볼프강 폰 괴테

 

그의 주장은 요약하자면 간단하다. 우리가 지금 너무나 당연시하고 있는 삶의 모습은 의외로 역사가 짧은 전통이며, 완전히 다르게 살아간 사람들도 존재하고 있으니, 나와 함께 역사 속으로 시간여행을 떠나보자는 저자의 제안. 먼 나라에서 온 음유시인이 들려주는 낯선 이야기처럼 흥미롭고 진지하다.

 

1부 인간관계에서 저자는 사랑, 가족, 공감을 다루고 있는데 사랑에 대해서는 역사적 철학적인 사례를 근거로 하여 7가지의 사랑의 다양성을 이야기한다. 그 중에서도 17세기 네덜란드인의 부부관계에서 우리는 새로운 모델을 찾을 수 있다. 가족 간의 가사분담문제에 있어서도 새로운 가능성을 아카 피그미족에서 발견하게 한다. 공감에 있어서는 극단적인 갈등관계에 있던 KKK 열성단원 C.P와 흑인민권운동가였던 앤의 사례 등을 제시함으로써, 어떤 상황에 있는 사람이든 공감할 수 있음을 역설한다.

 

네덜란드인은 결혼 생활이 에로스와 프라그마 이외에도 필리아, 즉 동지 같은 우정을 제공해야 한다고 믿었다. – p.43

 

아카족 남자들은 세상에서 가장 육아에 헌신적인 아빠들이다. 그들은 하루의 대략 47퍼센트 정도를 아이들을 안고 있거나 바로 옆에서 아이들을 보살핀다. (…) 아카족 남자들이 아이 돌보는 일을 많이 할수록 아이에게 더욱 애착을 느끼게 되고, 그런 애착이 아이들을 돌보고 싶은 마음을 더욱 커지게 한다. – p. 66

 

그제야 ‘우리’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울타리 정반대 쪽에 있는 두 사람이 동일한 문제를 안고 있었고. 그녀는 흑인이고 나는 백인이라는 사실만 다를 뿐이었습니다. 그때를 계기로 나는 앤과 협업을 했고 훌륭하게 해냈습니다. 앤이 정말로 좋아지기 시작하더군요. – p. 114

 

2부 먹고살기에서는 일에 대해서는 자본주의 생산체제가 인류의 직업환경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를 조망하면서 핀 공장의 컨베이어 벨트에서 탈출하라고 조언한다. 직업의 목표를 돈에 두지 말고, 가치, 목표, 존중, 재능의 관점에서 다시 한 번 고려해보라는 것이다. 시간과 돈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새로운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산업혁명이 진행되면서 시간 측정의 부정적인 결과들이 서서히 드러났다. 시간이 일종의 사회적 통제와 경제적 착취 수단으로 전락한 것이다. – p. 179

 

소로의 월든 호수 체류는 정신적인 탐구라기보다는 가능한 적은 돈으로 사는 법을 터득해 노동 시간을 최소화하고 여가를 극대화 하려는 매우 현실적인 노력이었다. – p. 238

 

3부 세상 탐구에서는 감각, 여행, 자연을 다루고 있는데, 우리가 항상 사용하고 있는 감각의 잠재력이 무궁무진하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이를 활용해 삶에 새로운 차원의 의미를 부여할 것을 제안한다. ‘여행’에서는 탐험가, 순례자, 관광객, 유목민의 다양한 여행을 제시하면서 생활의 중단인 ‘time off’로서의 여행이 아닌 ‘time on’으로의 여행의 가능성을 제안한다. ‘자연’에서는 인간의 역사상 선호하는 생활방식 변화와 맞물려 자연에 대한 사람들의 접근법과 태도가 급격하게 변해왔음을 보여주면서, 어떻게 우리가 자연과 관계를 맺고 공존해야 하는가에 대해 이야기한다.

 

4부 관습 타파에서는 신념, 창조성, 죽음을 다루고 있다. 소신공양으로 독재자의 불교탄압에 저항했던 틱꽝득 스님과, 간디와 톨스토이의 사례를 통해 신념대로 실천하며 살아가는 삶의 모습을 역설한다. 창조성에 있어서는 모차르트나 미켈란젤로와 같은 천부적인 재능을 창조성이라고 강조한 나머지 개인의 창조성을 억압했던 구조를 이야기하며, 요리와 DIY를 통해 자신의 창조성을 개발할 수 있음을 제안한다.

 

마지막장 죽음은 이 책의 대미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의 편집자는 출판사 서평을 통해 12장을 먼저 읽고 난 후에 자신의 관심을 가지는 분야를 읽어나가기를 권유하고 있다. 그럴 만도 하다. 525페이지나 되는 두꺼운 책을 작심하고 읽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저자는 죽음을 다루면서 현대사회에서 죽음이 너무 멀어져 있는 것을 지적한다. 역사적으로 죽음은 항상 우리 곁에서 만날 수 있는 것이었다. 임종은 집에서 맞이했고, 장례식은 동네에서 치러지는 공동체의 행사였으며, 묘지는 사는 곳에서 가까웠다. 따라서 저자는 두려움을 심화시키지 않으면서 삶의 의미는 깊게 하는 식으로 죽음을 우리 삶에 가까이 가져와야 한다고 역설한다. 또한 사회 차원에서 과감하게 죽음에 대한 대화를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방대한 저작이지만 흥미롭게 읽히는 한 권의 책. 그래서 그 책의 이름은 “원더박스”인지도 모르겠다. 이 책은 현대사회의 여러 가지 모순 속에서 혼돈과 불안을 느끼는 독자들에게 또 다른 삶의 대안을 모색하는 과정이 될 수 있다. 나 역시 조만간 그의 피리소리에 이끌려 성 밖으로 따라나설 것 같은 조짐마저 보인다.

 

글 ㅣ 조정미(시인, 출판인)

“항상 소통의 공간을 꿈꿉니다.”

 

* 뉴스레터를 통해 예고 드렸던 ‘열린 수요일’ 기사는 7월 17일에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양해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