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섬 나오시마

아트 프로젝트 예술의 재탄생

 

후쿠타케 소이치로, 안도 타다오 저 | 박누리 역
마로니에북스 | 2013.03.15

 
 

오직 신과 인간만이 세상을 창조할 수도 있고 파괴할 수도 있다. 이것이 인간의 비극이다. 성경 창세기에서는 조물주께서 마지막으로 인간을 창조하는 과정에서 특별 서비스를 추가하셨다. 신의 형상대로 인간을 만드셨다는 대목이다. 자신의 형상대로 창조한 인간들에게 온 천하의 피조물을 맡겨 잘 다스리게 하기 위해서다. 그러면서 남자와 여자를 축복하며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며, 땅을 정복하라고 명령한다.

 

그런데 불행히도 여기에서 인간의 위대한 착각이 시작된다. 땅에 충만하며 땅을 정복하라는 것을 인간 탐욕에 기반한 개발의 논리의 근거로 삼는 것이다. 창조한 자연을 지키고 잘 가꾸라고 맡겨준 정원사의 역할을 망각한 채 인간의 탐욕을 채우기 위해 자연을 파괴하는 타락의 길을 걷게 된다. 이것은 21세기의 지구촌이 앓고 있는 심각한 병증이다. 차라리 모르는 편이 속편한 불편한 진실들이 산재해 있다.

 

나오시마 섬도 개발의 논리에 충실한 인간의 손에 의해 파괴된 섬이었다. 나오시마는 일본 세토나이카이 내해에 있는 작은 섬으로서, 둘레 16㎞에 인구는 3300명 수준이다. 해안을 따라 공업지대가 발달하다 보니 나오시마는 산업폐기물 폐기장이 되어 지독한 환경오염에 시달렸다. 그 결과 한때 주민 수가 200명까지 줄어들기도 했다.

 

나오시마 섬에 변화의 기회가 찾아온 것은 일본 출판교육기업인 베네세 그룹의 후쿠타케 소이치로 회장이 아버지의 유지를 이어받아 1989년 쇠락해가는 나오시마 섬에 국제캠프장을 열게 되면서부터다. 이후 1992년 미술관 겸 호텔인 베네세 하우스를 세우게 되었고, 지속적으로 섬 전체를 변화시켜 나가는 작업을 시행하게 된다. 『예술의 섬, 나오시마』는 이 과정을 담고 있는 책으로서, 후쿠타케 회장의 서문을 비롯하여 프로젝트에 참여한 여러 예술가들의 체험기가 함께 실려져 있다.

 

후쿠타케 회장은 현대미술과 접목하는 아트 프로젝트를 통해 섬을 예술 공간으로 재탄생시키는데, 이 과정에는 후쿠타케 회장을 비롯하여 일본의 대표적인 건축가인 안도 타다오를 비롯하여 한국의 예술가인 이우환, 공간에 맞춰 작품을 설치한 미야지마 다쓰오, 스기모토 히로시 및 기획자 기타가와 프람 등이 협력한 프로젝트였다는 점이 더욱 놀랍다. 이들이 얼마나 행복하고 즐겁게 프로젝트에 임했는지, 이 책의 곳곳에서 그들의 고백을 들어볼 수 있어서 더욱 흐뭇하다.

 

또한 이 프로젝트가 성공하게 된 핵심적 요소는 섬에 살고 있는 주민들과의 협업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 수많은 지자체에서 지역문화를 살리기 위한 노력을 경주한 결과 많은 성과를 내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결과물로 만들어놓는 수많은 미술품들은 왠지 지역의 정서나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는 동 떨어지는 느낌을 주는 것은 사실이다. 그것은 아무래도 지역주민들의 생활방식과 문화, 정서를 고려하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관이 주도하는 방식에서 기인한 것은 아닐까? 후쿠타케 회장은 이 프로젝트의 목적을 “현대미술과 더불어 ‘노인이 웃는 얼굴로 살 수 있는 지역’을 만들자”는 데에 두었고, 지역주민이 행복을 되찾는 것에 주력했다.

 

나오시마 혼무라 주민들은 처음엔 완전히 다른 모습의 신사가 만들어지진 않을까 의심을 많이 했을 것이다. (…) 하지만 완성된 뒤 지금까지 쭉 현지인들이 매일 아침 비질을 하고 정갈하게 관리하고 있다. 나 역시 주민들의 요청이 있으면 새로운 새전함을 설계하는 등 지금까지도 조금씩 계속 손을 보고 있다. – P. 129

 

한번은 호박의 꼭지 부분이 높은 파도에 휩쓸려서 갔는지 없어져버렸다. 그런데 어떻게 할지 의논하고 있던 와중에 마을의 어부가 그것을 찾아서 가져다주었다. 고기잡이를 하러 나갔는데 열매 꼭지가 뻐끔뻐끔 앞바다에 떠올라 있었다고 한다. 그걸 보고 ‘아, 부두에 있는 그 호박이다!’ 하고 들고 왔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를 듣고 쿠마사 야요이도 그만큼 섬사람들에게 친숙한 작품이 되었다고 기뻐했다. – P. 141

 

나오시마 사람들의 사랑을 듬뿍 받는 건축물로는 “I♡湯”이 있는데, 湯(탕)의 일본어 음이 “유”인 것에 착안하여 ‘아이러브유’로 이름을 지은 목욕탕이다. 이 목욕탕의 특색으로는 목욕탕 바닥에 에도시대의 춘화 콜라주가 그려져 있는데, 이렇게 야한 목욕탕이 탄생하게 된 것은 후쿠타케 회장이 목욕탕을 설계함에 있어서 “불끈불끈, 섬의 노인들이 건강해지는 것, 그게 최고죠”라는 의견을 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렇게 주민친화적인 설계와 디자인으로 추진되었으니, 섬사람들의 애착이 남다르지 않을 수 없다.

 

나는 근 십몇 년 동안 나오시마가 조금씩 바뀌어 가는 모습을 지켜봐왔다. 미술과 섬사람들 사이에 접점을 만드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 그럼에도 나오시마에서는 꾸준히 오랜 시간의 노력 끝에 이것을 해냈다. 하이샤와 아이러브유에는 폐자재가 많이 사용되었다. 작업을 하고 있으면 섬 주민들이 여러 가지 물건을 가지고 와주기도 했다. 천공기, 놋쇠 스크류, 녹슨 철판 등을 갖다 주며 작품에 꼭 사용해 달라고 했다.

 

나오시마에 꼭 만들고 싶은 또 하나가 있다. 만남의 장이 되는 술집이다. (웃음) 그러니 나오시마 프로젝트는 아직 완결된 것이 아니다. – P. 165

 

이 책은 나에게 좋은 선물을 두 가지 안겨주었다. 선물이란 희망이다. 크게는 파괴자인 인간에 대한 좌절이 깊었는데, 터닝 포인트를 갖게 된 점이다. 그 결과 내 일기장에 “오직 신과 인간만이 파괴된 세상을 재창조할 수 있다.”는 한 줄을 덧붙이게 되었다. 작게는 나오시마 섬에 조만간 방문해보고 싶은 생각을 갖게 된 점이다. 나오시마의 아름다운 건축물을 보고 싶은 것도 있지만, 아름다운 창조적 공유지를 갖게 된 섬 주민들의 행복을 나누고 싶고, 그들이 어떻게 창조적 공유지를 운영하기 위해 참여하고 노력하고 있는지 느껴보고 싶어서다. 본받고 싶은 모델이 생긴다는 것과, 가보고 싶은 곳이 생긴다는 것처럼 행복한 일은 없다.

 

글 ㅣ 조정미(시인, 출판인)

“항상 소통의 공간을 꿈꿉니다.”

 

* 뉴스레터를 통해 예고 드렸던 ‘열린 수요일’ 기사는 7월 17일에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양해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