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는 사람이 만든다

 

소홍삼 지음|
미래의창 | 2013.03.11

 

 

‘가난한 예술 = 연극’으로 돈을 벌 수 있을까? 연극으로 돈을 벌기 힘들다는 공식을 깬 공연이 있다. ‘연극열전’이다. 2004년 연극계가 뮤지컬의 성장으로 불황에 빠졌을 때 기획된 ‘연극열전’은 제각각 극단과 극장의 이해관계에 따라 진행되던 연극무대를 하나의 큰 기획으로 묶어 시리즈로 공연하여 성공을 거두었다.

 

전문화된 기획과 연출로 ‘연극열전’이라는 브랜드를 만들어 낸 것이 성공의 비결이었다. 이전에 각각의 극단이 알아서 하던 기획 단계의 작업을 시장조사에 기반한 작품 선택과 프로모션 등을 통해 전문화 시킨 것이 주효했다. 1년 간 730회 공연, 총 17만 명의 관객이 동원되었고 평균 78퍼센트의 객석이 팔려 나갔다. ‘연극열전’은 믿어도 좋다고 관객들이 인식하게 된 것이다.

 

2010년 ‘투란도트’는 운동장 오페라로 우리나라 공연무대의 역사에 한 획을 그으며 성공했다.

 

야외 오페라가 성공할 수 있었던 요소 중 하나는 ‘장소’다. 이탈리아 베로나의 야외공연장은 옛 로마의 검투경기장이었다. 중국 자금성 역시 투란도트의 실제 역사적 장소로 착각할 만한 유적이다. 오스트리아의 브레겐츠페스티벌은 아름다운 호수와 거대한 상징적 무대가 인상적이다. 핀란드 사본린나 오페라페스티벌은 거대한 호수와 고풍스러운 중세의 성에서 열리는 오페라축제이다. 이들 야외 오페라 공연관객의 입장에서는 오페라관람에 못지 않은 관광과 낭만적인 상상을 덤으로 얻는 효과가 있다. – p104

 

야외오페라 공연의 성공요인을 설명한 이 부분을 보면 공연 그 자체뿐만 아니라 배경이 되는 장소까지 감안한 기획의도를 잘 설명해 주고 있다. 결국 우리가 무대를 통해 얻게 되는 것은 바로 ‘낭만적인 상상’이다. 그리고 이 기억은 평생을 남게 될 것이다. 자금성에서 투란도트를 공연하면 어떤 효과가 있을까? 이 발상 하나만으로도 무대는 성공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투란도트’의 뒤를 이어 초대형 오페라 공연이 줄을 잇게 되는데 완성도가 뛰어난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적자로 막을 내리는 공연들이 속속 등장했다. ‘투란도트’의 시도를 답습하듯 공연의 배경이 ‘운동장’이라는 점도 식상했고, 그만큼 상상력을 자극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즉, ‘장소’가 주는 극적인 효과가 없었다. 이미 ‘투란도트’를 통해 관객들은 눈이 높아졌고, 그 이상을 기대하게 된 것이다.

 

가치 있는 콘텐츠가 무대에 오르기까지는 공연기획자, 제작자, 연출, 배우, 무대 스탭, 마케터, 문화행정가, 티켓 마스터, 하우스 매니저 등 수많은 사람들의 손과 정성을 거쳐야 한다. 2000년대 들어 높은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국내 공연시장의 발전과 성장의 과정에는 이처럼 수많은 관계자들의 땀과 눈물, 치열한 고민과 열정의 흔적들이 있어 왔다. 하지만 아쉽게도 우리 공연예술계는 이렇게 소중한 경험들에 대한 기록화 작업에 다소 소홀한 편이다. 이런 아쉬움, 이 책을 통해 어느 정도 달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무대와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사람이라도 이렇게 무대가 탄생하기까지의 과정을 속속들이 알고 보면 공연은 이전보다 훨씬 감동적이 된다. 보지 못했던 디테일을 통해 숨어 있던 이야기가 전해지고, 기획자와 배우간의 개인적인 교류의 히스토리를 통해 인간적인 매력을 발견하게 되며 연출자와 무대 스탭들의 호흡이 왜 중요한지, 이 순간에 그것은 어떻게 빛나는지를 이해하면 전혀 다른 세계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뛰어난 무대공연 기획자의 눈으로 본 10개 분야에서의 무대공연 성공과 실패를 분석해 찬찬히 기록하고 있다. 이론과 현실의 적절한 경계선 상에서 쓰여진 이와 같은 책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 무대 기획자의 길을 택한 사람들에게는 더욱 특별하고 소중한 지침서가 될 것임에 틀림없다.

 

무대를 제대로 이해하며 보고 싶은 당신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